산은, '자회사' 표결 강행에 용역노동자들 고강도 투쟁 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산은 외주 IT 개발자 사망 의혹 제기

▲ 산업은행 여의도 본사.

[초이스경제 임민희 기자] KDB산업은행(회장 이동걸)이 두레비즈 등 용역업체 직원들과 정규직전환 문제로 상당한 진통을 빚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외주 IT 개발자 사망사고까지 불거지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산은은 용역노동자들의 강력반발에도 불구하고 '자회사 방식(자회사 신설 후 용역직원 고용승계)' 표결을 강행해 파장이 일고 있다. 또 지난 10일에는 산은 차세대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외주 개발사 직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 이 사실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알려지면서 과로사 등 여러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전환을 비롯해 근로자들의 '노동권 보장'을 강조해 왔지만, 정작 솔선수범을 보여야할 국책금융기관인 산은에서 외주업체 관련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3일 금융계에 따르면 산은은 지난 12일 오후 3시 정규직전환협의기구 회의를 열고 '자회사 방식' 안건을 상정해 표결을 진행했다. 용역노동자 대표단 3명은 산은의 '일방적 용역자회사 표결 강행'에 반대하며 회의에 불참했다.

산은 관계자는 "자회사 방식에 대한 표결이 진행된 건 맞다"면서도 "참석을 못한 노동자대표단에 서면으로 답변을 받은 후 빠르면 이주 금요일쯤 최종 결과가 나올 것 같다"고 밝혔다. 산은이 표결을 통해 '자회사 전환'을 결정지을 경우 법인설립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서경지부 산업은행분회(이하 노조)는 이날 오후 2시 30분부터 4시까지 산은 본점 후문에서 집회를 열고 "산은이 '자회사에서 자회사'로 간판만 바꾸는 정규직전환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고 강력 규탄했다.

노조는 "현재 정규직전환협의기구 위원(총 16명) 대다수가 산은 측 인사들로 채워진 상황에서 표결처리를 하면 당사자인 용역노동자들이 어떻게 그 결정을 납득할 수 있겠느냐"며 "노동자 대표단이 제안한 공개토론회를 수용하고, 제대로된 정규직화를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노조 조합원들은 정규직전환협의기구 참관을 요구하며 산은 본사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경찰들이 이를 막으면서 대치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산은은 지난해 9월 정규직전환협의기구를 구성한 이래 올해 11월까지 총 20차례 회의를 열고 정규직 전환방식을 논의했다. 용역노동자들은 저임금 및 열악한 처우 문제를 제기하며 '직접고용'을 지속적으로 요구한 반면, 산은은 자회사 방식을 고수하면서 평행선을 달렸다.

노조 측은 산은의 자회사 방식 표결강행에 대응해 전면파업 등 고강도 투쟁을 검토 중이다.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관계자는 "이번 자회사 표결로 정규직전환협의기구 논의가 사실상 끝난 만큼, 향후에는 금융위원회에 산은의 자회사 설립승인 신청을 반려할 것을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공공운수노조 산업은행분회 조합원들이, 지난 12일 산은 본점 후문 로비에서 집회를 열고 산은의 용역자회사 표결 강행을 강력 규탄했다. /사진=임민희 기자

산은은 용역노동자 정규직전환 문제로 1년 넘게 파열음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발생한 '외주 IT개발자 사망사고'를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제기되면서 곤혹스런 입장에 놓였다. 지난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는 '어느 IT개발자의 죽음'이란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청원글에 따르면 지난 10일 오후 6시 30분 산업은행 별관 2층 화장실에서 산은 차세대 프로젝트 외주 개발사(대원씨앤씨) 직원 신모 차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산은 프로젝트 주수행사인 SK C&C는 다음날 직원들에게 신씨 사망사고 내용을 간략히 전달했다.

동료라고 밝힌 청원자는 신 씨의 사망 배경으로 업무 과중과 불합리한 하청구조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신 차장은 평소에 지병이 있어 약을 먹고 있었다고 한다"며 "지병이 악화돼 갑작스런 죽음이 발생했다면 개인적인 죽음일 뿐 이 프로젝트는 전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라고 의문을 나타냈다.

청원자는 "모든 프로젝트는 기한 내에 끝내야하는 빅뱅 방식이었다. 쫓기고 쫓기는 중압감은 상상을 넘어선다. 수행사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개발자들을 쥐어짠다. 수행사의 수익은 개발자들을 쥐어짠 결과물이다. 개발자들은 스트레스에 공황장애, 뇌졸증, 심근경색 등 항상 위험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 '갑' 산업은행 '을' SK C&C '병' 1차 하청업체"라며 "이번 프로젝트는 정규직만 들어 올 수 있었는데, 모든 하청업체들은 최저임금으로 정규직화해서 프리랜서들을 고용하고 나머지 금액은 개인사업자를 등록하게 해 매출을 발생시켜 임금을 지급하는 방법을 썼다"고 주장했다. 산은 및 SK C&C가 그들을 방패막이로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되는 '하청업체 정규직'이라는 카드를 썼다는 것이다.

청원자는 "산업은행 건물에서 산업은행 혹은 SK C&C 직원들에게 같은 층에서 직접지시를 받으며 일하는 개발자들 중 어느 누구도 고인이 된 신 차장의 죽음이 자신에게 찾아온다 해도 이상 할 일이 아니다"며 "우리는 왜 근로 사각지대에 서있어도 되는 것인가?"라고 울분을 토했다. 이 청원은 하루 동안 8000여명이 동의했다.

이와 관련 산은 관계자는 "정확한 사인은 경찰에서 조사 중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한 만큼 저희가 할 수 있는 절차들을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정부가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를 국정과제로 내세웠지만, 공공기관들이 '자회사'를 통한 사실상 '무늬만 정규직화'를 하고 있다는 비판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동걸 산은 회장에게 "두레비즈를 자회사로 변화시키는 것은 결국 산은 임직원들이 퇴직하면 가는 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고 일침한 바 있다.

아울러 올해 국감에서는 대기업의 하청업체 갑질 문제도 중점적으로 다뤄지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근절 의지를 약속하기도 했다.

국감 이후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 전환문제와 기업 갑질 현안에 대해 정치권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산은이 관련 잡음들을 원만하게 처리해 나갈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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