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선동·왜곡”이라는 언론, 당시 실제상황 보도는 제대로 했나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김혜수가 연기한 한시현의 실제 인물에 대해 앞선 기사에서 일부 언급했었다. (관련기사: '국가부도의 날' 김혜수... 실제 인물은 누구?)

대외 채무를 지급할 외화가 고갈돼 국가부도 위기를 가져오는 외환위기 가능성에 대해서는 1997년 11월보다 8개월이나 앞선 3월초, 한보그룹 부도 직후 정규영 한국은행 국제부장(전 서울외국환중개사장)이 한보대책 회의 보고서에서 언급한 것이 당시 국내에서 가장 빠른 경고였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위기의 심각성을 깨우치도록 직보를 한 사람을 기사에서는 재무관료 출신 청와대 인사로 언급했다. 이 사람이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란 사실은 외환위기 이후 여러 언론보도에서 알려진 사실이다.

이 뿐만 아니라 김혜수의 핵심적 역할인 재협상 주장과 결렬 선언을 통한 유리한 고지 선점 주장을 한 사람도 있다. 영화 내용뿐만 아니라, 위기 진행과정에서 상당히 중요한 고비가 되는 역할이다.

재협상을 주장했던 사람은 당국자가 아니라 당시 대통령선거에 후보로 출마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협상 결렬을 무기로 최대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자는 전략을 주장하고 또 실천한 사람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1997년 외환위기, 즉 ‘IMF 위기’에 때를 맞춰 이 나라에 나타나지는 못했다.
 

'같이 죽자'는 전략으로 성공한 협상가는?

이 전략을 써서 성공한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2년 뒤의 일이다. 1999년 대우그룹 부도 처리과정에서의 해외채권 협상 팀이다.

이 때 정황은 정규재 오형규 기자 등 한국경제신문 특별취재팀이 쓴 ‘대우패망비사 대우 자살인가 타살인가’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책에서는 “대우의 해외부채 협상은 대우 처리과정에서 비교적 결과가 괜찮았던 사례”라며 “우나라의 해외협상 사상 처음으로 원금탕감(60%)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책은 “외환위기 당시 원금 전액상환에다 연체이자까지 붙여줬던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국제적으로도 이런 식으로 빚쟁이가 고자세를 부린 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평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미국 중계권료 이후 국제 협상마다 국민을 실망시켜온 이 나라 당국자들이 처음으로 성공한 것이 대우그룹 외채협상이다. 그러나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을 상대해야 하는 한국에는 이런 사람들이 아직 나타나지 못했다.

외환위기에 대한 외국사례로 김혜수 식 ‘배째라’ 전략을 써서 성과를 낸 사람은 2015년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다. 그는 IMF와 유럽연합(EU) 등 채권단의 과도한 국민연금급여를 축소하라는 요구를 최대한 뿌리치면서 구제금융을 받아냈다.

한국에서는 그의 위기 대응방식을 평가절하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3년 만에 모든 IMF 차입금을 상환한 한국의 신속한 탈출과 비교하면 그렇다. 하지만 그리스는 사람을 최대한 보호하면서 느린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의 금 모으기와 같은 감동적 이벤트로 국가적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장면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막대한 사람들이 과도한 연금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는 마당에 급격한 연금축소는 그리스 사회를 붕괴시킬 것이 확실했다. 치프라스 총리가 유로존 와해를 내세워 연금제도를 지킨 이유다.
 

▲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 2015년 국제통화기금(IMF) 등 채권단과의 구제금융 협상에서 그가 보여 준 협상 능력은 평가절하하기 힘들다. /사진=그리스 총리 홈페이지.

 

그렇다면, 대우외채 협상팀과 같은 사람들이 불과 2년 전 IMF 위기에는 왜 안 나타났나. 그리고 치프라스와 같은 협상을 우리는 왜 못 했나라는 의문을 갖는 것이 마땅하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한 쪽이 못났기 때문이라고 단정을 지을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과 조건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나를 냉정하게 따지는 것이다.

우선, 그리스 치프라스 총리와의 비교다. 2015년 그리스는 한국이 갖지 못한 무기를 하나 들고 있었다. 유로존의 존속이다.

그리스는 독일 프랑스 등과 함께 단일통화 유로를 쓰는 나라다. 유로존 국가인 그리스의 채무불이행 선언은 유로존 와해가 당연히 뒤따르게 돼 있었다. 미국 중국 러시아에 맞서는 4강 ‘통합 유럽’을 추구하는 독일 프랑스로서는 절대 피해야 할 상황이었다. 이것이 치프라스 총리의 최대 무기였다. 협상 과정, 치프라스 총리가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우호증진을 과시했는데, 탈유럽-친러시아 행보는 ‘페이크’에 가까웠고 핵심무기는 역시 유로존 존속이었다.

유로존이 그리스에게 협상 무기도 됐지만, 한편으로 제약조건도 됐다. 단일통화를 쓰기 때문에 한국 멕시코처럼 자국통화 절하를 통해 위기를 빨리 탈출하는 방법을 그리스는 쓰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어떤 상황이든, ‘죽을 거면 같이 죽자’는 ‘벼랑끝 전술’은 언제나 힘을 발휘한다. 다만 한국인들의 정서에는 ‘내 잘못이면 무조건 내가 책임져야’라는 심성도 있어서 이 전술을 잘 쓰지 못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IMF와의 재협상’ 주장은 했지만 채무불이행(디폴트) 즉, 디폴트는 절대 회피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강조했다. 그는 당시 토론회 등에서 “채무불이행을 하고나면 석유를 사도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다 줘야 한다”며 위험을 지적했다.

더욱이 1997년 당시는 상대가 뭐라고 하기 전에 우리스스로 자신의 손발을 묶는 어리석은 행태가 나타났다. 이것은 정치가 한국인을 못나게 만든 전형적인 사례다.
 

IMF의 고금리 요구, 무수한 사람을 죽게 만든 원흉

몇몇 언론이 요즘,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 대해 “왜곡이다” “선동이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굳이 영화의 각색까지 언론이 트집을 잡을 것이라면, 정작 자신들은 영화가 아닌 외환위기의 실제 상황에서 제대로 보도를 했는지를 돌이켜 봐야 한다.

영화에서는 IMF 협상단이 첫 등장부터 한국의 대통령후보들 전원에게 합의 준수 각서를 쓸 것을 요구한다. 실제로도 당선이 유력했던 김대중 후보가 이런 약속을 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중간과정이 생략됐다. 김 후보의 재협상 주장 이후 벌어진 국내 언론과 정치권의 행태다.

여기서 우선 짚고 넘어갈 것은 김대중 후보의 재협상이 반드시 절대선이었다고 못 박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대통령 후보에 출마한 야당후보로서 또 하나의 전선을 만들기 위한 전략이었을 가능성도 물론 있다.

그러나 어찌됐든, IMF 요구 중 고금리 처방에 대해 즉각 반발하고 나선 그의 지적은 상당히 의미 깊은 것이었다. 재무 회계적으로 위기를 극복했어도 한국사회가 붕괴된 상처, 수많은 사람들이 숨은 쉬고 있어도 사회경제적으로 회생불가능하게 만든 원흉이 바로 이 고금리다.
 

▲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는 김혜수. /사진=네이버 영화알림페이지.


고금리가 약탈적 해외자본의 음모에서 나왔다는 뚜렷한 근거는 역시 별로 없다. 해외채권단의 한국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했다. 이것은 영화와 상당히 다른 시각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영화의 왜곡이나 선동이라고 비난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영화란 뚜렷한 선악구도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금리는 부도난 나라에서 구조조정을 강요하는 측면도 있지만, 높은 이자에 관심을 가진 외국인들의 발길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점도 있다. 이 때문에 IMF와 같은 기관들은 외환위기 국가에 고금리를 단골처방한다.

문제는 당시 한국에는 제대로 된 채권유통시장도 없었다는 것이다. 금리가 높아도 이를 누리면서 뛰어놀만한 그라운드도 없었다. 덮어놓고 금리만 올려 무수한 사람이 죽어나가게 만들었다.

2010년 IMF 총재를 하고 있던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은 연합뉴스와의 서면인터뷰에서  “당시 어떤 실수가 없었다고 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연합뉴스는 “당시 고통에 IMF도 일부 책임이 있었음을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IMF의 한국에 대한 처방에서 제일 문제가 지적되는 것은 역시 고금리다.

뒤늦게 나오는 사후약방문들을 볼 때마다, 왜 그때는 사람들이 죽어 나갈 게 명백한 길을 못 막았나라는 아쉬움이 깊어진다.

1990년대까지 한국의 서민은 특유의 온정주의가 건전한 금융문화를 저해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맞보증이다. 금융기관 대출을 받기 위해 A가 B의 보증을 서고 B가 A의 보증을 섰다.

외환위기 직후, 금리가 살인적으로 폭등하자 두 사람이 내야 할 이자도 살인적이 됐다. 먼저 A가 자포자기하고 도망을 가고 말았다. B는 자기 빚도 벅찬데 A의 빚까지 갚아야 했다. 마침내 B도 도망갔다. 한국인 가운데 90%는 6촌 이내 이렇게 도망간 사람이 있다는 말이 이래서 나왔다. 과거 잘못된 금융관습을 근절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이 회생불가능이 됐다. 아무리 IMF 차입금을 조기상환했어도, 이렇게 쓰러진 사람들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오늘날 심각한 소득양극화의 뿌리는 여기 있다.

이런 국민들이 사는 나라라면, 위정자와 언론은 어떻든 사람을 죽이는 독약 같은 처방에 문제라도 지적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재협상을 요구하는 사람의 등뒤에 우리 스스로 화살을 쏘아댔다.
 

IMF와의 협상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대통령선거 뿐

당시 기사들의 일부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10일자 일부 신문에 ‘왜 IMF 재협상을 요구하는가’라는 광고를 실은 이후 해외 금융기관들간에 ‘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 한국시장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 극도로 인색하다. 대통령 후보들은 재협상을 주장하고... ”

기자들의 칼럼도 있었다. “일부 대선주자까지 나서 본인은 물론 한국정부와 IMF간에 한 국제적 약속까지 뒤집고 "당선 후 IMF와 재협상하겠다"고 하자 비판의 강도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식으로 증폭됐다. 그리고 곧 ‘미친 짓(madness)’으로 바뀐 것이다.”

대통령후보들에 대한 언론의 호불호를 근거로 어느 언론사의 어떤 기사인지 추측한다면 과히 틀리지 않는다.

여기에 상대정치진영도 호응(?)하고 나선 것은 당연했다. 이미 국가파산위기를 초래한 정당의 후보는 “국가 파산위기를 몰고 올IMF 재협상 주장을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대선후보에서 사퇴한 전 경제학교수는 “미셸 캉드쉬 IMF총재와 잘 아는 사이여서 전화했다”며 그가 재협상주장을 매우 비판했다고 전했다.

이것이 국가부도 위기 직전의 상황에서 이 나라 지도층이 보여준 행태다. 상대로부터 최대한 국민을 보호하기보다 스스로 뒷덜미를 공격해 물어뜯는 망국의 전형적 군상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송나라 명장 악비를 물어뜯은 진회에게도 변명거리가 있다는 세상이긴 하다.

어쩌면 지나가는 심정에서 나왔을 ‘재협상’주장일지도 모르는데, 이렇듯 죽잡고 달려드는 행태에서 김혜수의 가장 중요한 네 번째 역할 ‘극한에 기대 국익을 챙기려는 영웅’이 아예 등장도 안한 것에 대한 대답이 된다.

이런 형편이니, “대통령후보들 전원 각서 써라”라는 무례한 요구를 “결례”라며 거부하는 후보가 있었다면 또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뻔한 일이었다.

영화 속의 주인공 영웅 김혜수는 실제로도 부분부분 이 나라에 존재했었다. 그런 사람들이 결정적인 장면에서 하나로 결집할 수 있는 시민사회와 논의구조가 이 나라에 없었다. 위기도 막지 못했다.

‘IMF 위기’는 방탕이나 기근 등에 의해 초래되는 고전적 위기가 아니다. 그 때도 한국인들은 전 세계적으로 부지런했다.

‘IMF 위기’는 전적으로 사회지도층들이 국가위기를 잘못해, 순진한 서민들을 죽어나가게 만든 기술적 위기다. 당시 자신의 신분이 높았던 사람들일수록 두고두고 이웃들에게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영화에 대해 사족을 하나 덧붙인다. 영화의 속성에 비춰 이해가는 면도 있지만, 사익을 챙기려는 사악한 집단들이 자신들의 의도대로 위기상황을 이끌어갔다는 시각은 당연히 동의하지 않는다. 뚜렷이 정의되지도 않는 ‘신자본주의’라는 말을 남발하는 사람을 보면 ‘깊이 있게 아는 것 같지는 않은데 댓글은 많이 쓰고 다니겠구나’라는 선입관이 먼저 든다.

이 글이 ‘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56회’다.

 

[57회] [IMF 위기, 원인은 무엇이었나 (1)] 1997년 봄에 벌어진 일들

[55회] IMF 위기... 그때의 산업은행 역할은 막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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