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사장을 '한심한 의원' 보다 '더 한심한' 사람으로 만드는 짓일 뿐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본지의 국감결산 시리즈는 지금까지 주로 장관과 차관, 국회의원 등 국감을 주도하는 고위층 인사들을 주로 다뤘다.

그러나 국정감사 현장에는 이들 ‘사회 지도층 인사’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보다 몇 십 배 더 많은 수의 피감기관 직원들이 출석한다. 국감을 중계하는 방송카메라가 잡는 화면은 장차관을 중심으로 한 극히 일부공간이다.

이번에는 장관, 국회의원이 아닌 국감현장의 서민(?) 직원들 몸가짐을 논하기로 한다.

피감기관이 국정감사를 받는 날 이른 아침, 이 기관 현관에는 대형버스 한 대가 대기한다. 국정감사에 기관장을 수행할 직원들을 수송하기 위한 것이다.

기관의 모든 직원이 국감현장에 가는 것은 아니다. 작게는 수 백 명에서 크게는 수 천 명에 달하는 인원 중 주로 핵심부서 과장급 이상의 직원만 가게 된다.

기관 내에서는 국감에 다녀왔다고 하면 뭔가 비중 있는 위치를 차지한 사람처럼 보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입사한지 얼마 안되는 후배들 눈에 ‘국정감사를 따라갔다 온 선배’라고 하면 “장차 우리 회사에서 중용될 선배”로 우러러 보고 싶어진다.

국감을 다녀 온 선배의 말 한마디도 과연 ‘포스’가 넘쳐난다.

“국회의원들 전부 무식한 소리들만 하고 앉았어.”

이제 사회 첫발을 내디딘 후배는 국회의원같이 유명한 사람을 TV가 아니라 실제로 눈앞에서 만나면 상당히 황송할 것 같은데 이 선배는 이렇게 차원이 다른 거물임을 실감한다.

후배는 그날 국감현장에서 이 선배가 실제로 어디서 뭘 했는지, 그리고 한 번 얼굴 보기도 어려운 회사의 기관장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른 채 또 한 해의 국정감사가 지나간다.

기관장 한 사람의 국감출석을 위해 수 십 명 직원들이 따라오는 것은 국민을 대행해 질문하는 국회의원들에게 정확한 답변을 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기관장이라도 모든 실무를 자세히 알 수는 없다. 특히 구체적 숫자에 대해 예정에 없던 질문이 나오면 실무진의 도움을 받아 답변해야 한다.
 

▲ 국회 회의장안에는 장관, 차관이나 공공기관 기관장 등 주요 증인 뿐만 아니라 수많은 간부들이 뒷줄에 대기해 장차관이나 기관장의 답변을 보좌한다. /사진=장경순 기자.


기관장(장관, 차관 포함) 개인의 역량이 출중해 모든 질문에 척척 답변할 수도 있지만, 그런 전설적인 경우는 거의 드물다. 국감의 성패는 기관장이 출석한 다른 직원들의 보좌를 얼마나 제대로 받느냐에 있다.

출석한 직원들이 해야 할 일은 행여 또 어떤 질문이 내 직무와 관련돼 나오느냐 한 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대기하는 것이다.

실제로, 국감 현장은 거대한 방직공장의 기계가 돌아가듯 직원들이 회의장 안팎에서 답변을 보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상임위 회의장 안에는 기관장 뒤로 수 십 명 간부들이 앉아있다. 회의장 밖에는 훨씬 더 큰 대기 장소에 실무직원들이 노트북과 간식거리를 쌓아놓고 TV로 중계되는 회의장면을 지켜본다. 보충자료가 필요한 질문이 나오면, 신속하게 자료를 프린터로 출력해서 회의장 안으로 전달한다. 의원 질문이 끝나기 전에 자료가 메모로 정리돼서 기관장의 책상에 놓여야 한다.
 

▲ 국회 회의장 밖에서는 입장하지 못한 피감기관의 직원들이 TV로 회의상황을 지켜보며 회의장 안에서의 답변을 지원한다. /사진=장경순 기자.


비교적 국정감사를 순탄하게 받는 기관장은 매우 편안한 모습을 유지한 채 답변을 지속한다. 하지만 이는 우아하게 떠 있는 백조가 물아래에서 마구 발장구를 치는 이치와 같다. 그의 태평한 답변이 가능한 것은 쉴 새 없이 분주히 돌아가는 회의장 안팎의 직원들 덕택이다.
 

▲ 국정감사를 받는 피감기관의 직원이 국회 복도에 자리를 마련해 업무를 보고 있다. 국정감사와 같은 특별한 국정감사를 받는 하루는 기관장 뿐만 아니라 중하위직 직원들까지 평소 사무실 공간의 아늑함을 따질 겨를이 없다. 여타의 장소라면 이 여성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야 하지만, 국회 경내에서 벌어지는 대부분 행위는 의정활동의 일환으로 취재대상이 된다. 국정감사 때 노고를 더 하는 사람은 생중계 화면에 나오는 기관장 뿐만 아니다. /사진=장경순 기자.


뒷줄의 간부들 사이에 메모가 오가고, 때로는 바깥에서 자료가 전달돼 들어오니 언뜻 보기에는 상당히 어수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어수선에 대해서는 국회의원들 그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질문을 더 열심히 답변하기 위한 노력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는 전혀 종류가 다른 어수선함도 있다.

기관장 뒤 간부석에 훈훈한 ‘가족 한마당’이 펼쳐지는 날이다. 뭔가 재미난 구경을 하는 듯,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고 자기들끼리 키득거리기도 한다. 몇몇 간부들의 표정에 해맑은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맨 앞줄의 기관장은 이날 아침부터 밤이 깊도록 혹독하기 이를 데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의원들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기를 거듭한다. 때로는 애처롭게 간부들을 뒤돌아보면서 지원을 요청하지만, 부하들로부터는 반응이 없다. 담소하고 있던 사람들은 지금 무슨 얘기가 오간 줄도 모른다.

국회에서 출석기관장과 그를 보좌하는 간부들의 표정은 반비례관계가 성립한다. 기관장의 표정이 느긋한 날, 간부들은 전원 긴장된 표정을 풀지 않다가 돌아간다. 간부들의 표정이 여유롭고 화기애애하기까지 한 날은, 기관장이 매우 침울한 모습으로 국회의원들의 모든 공격에 깊은 내상을 입고 돌아간다.

국감현장에서 딴전을 피우는 직원들은 때로는 더 심각한 오해도 초래한다. 키득거리는 모습이 국회의원을 비웃는 것으로 보이기 쉽다.

지금까지 국회의원들은 이런 느낌을 받더라도, 해당 직원을 직접 질책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은 기관장에게 더욱 거센 질문을 하는 것으로 불쾌감을 해소했다. 분초를 아껴야 할 질문시간을 미관말직들 때문에 낭비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요즘 들어서는 국회의원들이 더 이상 참지 않고 키득거린 직원을 불러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정치인들이 뉴스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천문학적인 비난에 빠지는 일이 빈번하다보니 이들도 이제 인내의 한계를 넘어간 모양이다.

하지만 의원이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직원을 직접 불러일으켜 세우는 모습도 과히 바람직스럽지는 않다.

이와 같이 은근히 부아가 터질 만한 상황을 기가 막히게 절묘하게 대처한 사람이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다.

수 년 전의 어느 국정감사 현장은 특히 뒷줄의 간부석이 어수선했다. 취재진이 보기에도 저런 사람들을 국회의원들이 용케 잘 참고 있었다. 이런 날의 전형적인 특징대로 기관장은 질문에 답변 못해 쩔쩔매고 있는데 간부들은 맥이 풀려있는 사람 절반, 실없는 웃음을 머금고 담소를 나누는 사람이 절반이었다.

안 의원은 질문순서가 되자 기관장에게 “뒤를 한번 돌아보라”고 주문했다.

어수선하던 간부석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안 의원의 발언은 정숙 요구가 아니라 “저 가운데 여성이 몇이나 되느냐”는 양성평등 관련 질문이었다. 그가 소란을 단속하려는 의도로 돌아보기를 요구했는지는 불확실하다. 분명한 것은 이 순간을 기점으로 회의장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다.

기관장은 이미 그날 수도 없이 메아리 없는 간부들을 뒤돌아봤던 사람이다.

국회 현장에 따라와서 의원들 질문 하나하나마다 추임새를 넣듯이 키득거리고 조롱하는 것이 이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소속 의식’을 확인하는 습성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 습성은 기관장의 그날 하루를 더욱 피투성이로 만드는 아주 고약한 악습이다.

일부 국회의원이 무식하다는 비판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그 무식한 국회의원한테도 답변을 제대로 못해서 넋이 달아나고 있는 사람은 자신들을 대표하는 기관장이다. 오늘 국회를 왜 따라가는지를 망각한 직원들이 기관장의 운명을 이렇게 만든다.

2006년, 국회에서 이성태 당시 한국은행 총재는 심상정 민주노동당 국회의원(현 정의당 의원)으로부터 심오한 국제 자금흐름에 관한 질문에 쉽게 답변을 하지 못했다. 이 때 김병화 경제통계국장이 과감히 답변을 자처해 ‘울트랄리스크 러시를 막는 벙커’의 시간을 벌어줬다. 박식하기로 유명한 이성태 총재가 특유의 청산유수 달변을 회복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질문이 매섭기로 유명하면서도 담백한 성격을 가진 심상정 의원도 답변에 크게 공감하며 질문을 마무리했다.

며칠 후, 김 국장은 한은의 임원인 부총재보로 승진했다. 국회 답변 당시 이미 그의 승진이 정해졌을 가능성이 높지만, 인사는 마지막 순간에도 언제든 변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승진에 대해서만큼은 이성태 총재가 더더욱 확신을 가지고 최종 결재했을 것이 확실하다. 기관장을 모시고 간 국회 현장은 이렇게 ‘양날의 검’이란 속성도 갖고 있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