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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포니 신화' 대부, 그가 진정 원했던 것은?

기사승인 2018.11.01  15: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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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자동차 산업 뒷걸음치는 현실과 정반대로 가야한다는 믿음 한국에 전수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현대자동차가 비록 실적부진과, 부품업계에 대한 ‘갑질’ 논란에 시달리고 있지만 삼성전자와 함께 한국 경제의 원투펀치이고 성장엔진의 중요 부분이라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거의 없다.

어려운 때일수록, 현대자동차를 비판하는 사람일수록, 현대자동차가 전설을 시작하던 태동당시의 활력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미국의 자동차전문 매거진인 로드트랙은 1일 현대자동차의 최초 자동차 포니1은 “영국이 의도하지 않게 준 선물”이라고 소개했다.

로드트랙에 따르면, 포니 1의 개발자 조지 턴불 경(卿)이 현대자동차에 합류하기 1년 전인 1974년만 해도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은 앞으로 자신이 자동차의 세계 6대 생산기업과 5대 수출기업을 만들 것이란 것을 전혀 몰랐지만, 자동차를 새로 만들어서는 안되고 자동차 선진국의 여러 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만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고 소개했다.

현대는 이탈리아로부터 디자인, 일본으로부터 기술, 프랑스로부터는 기술과 금융, 영국으로부터는 기술과 금융, 그리고 핵심인력을 받아들였다. 핵심인력 중에서도 핵심은 오스틴 모리스의 조지 턴불이었다.

오스틴 모리스는 영국의 자동차 기업이었던 브리티시 레일랜드 계열이었다. 브리티시 레일랜드는 1980년대 이후 경영난이 심각해 부문별로 다른 기업에 팔리거나 이름이 바뀌는 등의 시련을 겪다가 사라졌다. 그러나 이 회사가 만든 미니, 재규어랜드로버, 레일랜드 트럭들은 지금도 생산되고 있다.
 

   
▲ 영국 BBC의 조지 턴불 특별방송에 등장한 턴불 경(卿)의 모습. /사진=유투브 화면캡쳐.

 

   
▲ 현대자동차 직원들의 조지 턴불의 자동차를 향해 경례하는 모습. /사진=BBC 방송 유투브 화면캡쳐.


현대자동차는 1975년 1월 이후 12개월 만에 늪지를 자동차 생산 공장으로 바꿨지만 자금이 부족해 한겨울 실내온도는 영하7도에 불과했다.

턴불은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착오를 인식하고 이를 한국에서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 때의 한국 노동자들은 노조, 파업, 근무환경 등에 대해 생소했다.

로드트랙은 이런 것에 대해 턴불은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캐딜락을 타고 가는 곳마다 경비원들의 경례를 받았다. 로드트랙은 턴불이 해야만 했던 일은 돼지머리를 놓고 치르는 고사에서 막걸리와 마른 생선을 먹고 한국의 토속 춤을 즐기고 일과의 마무리는 동료들과 가라오케를 즐기는 것이었다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회장을 즐겁게 하는 것도 그의 임무였다.

턴불이 브리티시 레일랜드를 떠난 것은 급여 뿐만 아니라 도널드 스토크스 회장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스토크스 회장은 42개 공장을 본사에서 강력하게 통제하려고 했지만, 턴불은 각각의 공장에 자율성을 줘야한다고 믿었다.

브리티시 레일랜드가 실적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턴불은 떠나기를 결심해 현대와 3년 계약을 맺었다.

포니1은 1975년 턴불에 의해 탄생했다. 영국의 자동차산업이 안고 있는 문제를 인식한 BBC는 한국에서의 턴불을 소개하는 특집 프로그램도 방송했다.

턴불과 그의 팀원들은 브리티시 레일랜드보다 4배나 더 엄격하게 포니를 테스트했다고 로드트랙은 소개했다. 그러나 한번 생산에 들어가면 정주영 회장을 비롯해 그 누구도 이를 정지시킬 수 없었다. 정 회장이 뒷좌석이 협소하다며 1.2인치를 즉시 넓힐 것을 요구하자 한국의 노동자들은 밤을 세워 다음날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냈다고 로드트랙은 전했다.

이와 같은 현대자동차 초기 모습은 높은 인건비와 잦은 파업에 시달리는 오늘날과 정반대다. 초창기 열악한 근무환경이 노사의 열정에 파묻혀 누적된 결과 1987년 이후 노조 운동을 더욱 거세게 만든 것으로도 지적된다.

   
▲ 2007년 영화 '화려한 휴가'에 등장한 포니1의 모습. /사진=뉴시스.


턴불은 3년간 현대자동차에서 근무한 후 이란을 거쳐 영국으로 돌아왔다. 1990년 기사 작위를 받고 1992년 타계했다.

그가 한국에 오기 전, 영국은 오스틴, 모리스, 다임러, 랜드로버, 재규어 등 수많은 브랜드를 공기업인 브리티시 레일랜드로 통합했다. 영국의 자동차산업이 기울어가는 것을 목격한 턴불은 한국에서 이를 철저한 교훈으로 삼아 포니 신화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현대·기아자동차가 마땅한 경쟁자를 찾기 힘들 정도로 1개 기업이 절대적인 지배를 하고 있다.

 

 

장경순 기자 folkdragon@daum.net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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