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롯데 신동빈 대신 출석했던 허수영 부회장과 전혀 딴판

▲ 정재욱 현대자동차 구매본부장(맨 왼쪽)이 15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사진=장경순 기자.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국회 정무위원회의 15일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정재욱 현대자동차 구매본부장이 답변했다.

질문을 던진 성일종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충남 서산-태안)은 그런 대답을 이미 알고 있었던 듯 바로 고개를 민병두 정무위원장(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쪽으로 돌렸다.

“이래서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꼭 국정감사에 나와야 하는 겁니다.” 이미 정 부회장의 국정감사 출석을 추진한 적 있는 성 의원이 또 한 번 강조했다.

정의선 부회장 출석요구에는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가세했다. 민병두 위원장은 3당 간사에게 정 부회장 출석에 대해 16일까지 합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성일종 의원이 정 부회장 대신 출석한 정재욱 본부장에게 물어본 것은 완성차와 부품업계간의 왜곡된 이익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를 한 회사로 통합해야 하는데 이와 같은 국가경쟁력과 관련한 중대한 문제를 정 본부장이 결정할 수 있느냐”였다.

정재욱 본부장 차원에서 “그렇다”고 답변하기 어려운 성격의 질문이었다.
 

▲ 증언대에 나선 정재욱 현대자동차 구매본부장의 뒤에 그의 좌석을 나타내는 이름표가 놓여있다. /사진=장경순 기자.


이날 정재욱 본부장은 예상 외로 답변에 나서느라 매우 분주했다. 민병두 위원장은 한 의원의 질문이 끝났는데도 정 본부장을 증언대에서 내려가지 말고 다음 의원 질문에도 답변할 것을 지시했다.
 

▲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료화면을 보면서 정재욱 현대자동차 구매본부장에게 질문하고 있다. /사진=장경순 기자.


재벌기업의 총수가 아닌 사장이나 임원급 인사가 국회에서 이렇게 질문 공세를 받은 것은 보기 드문 경우다.

허수영 롯데그룹 부회장은 호남석유화학 사장이던 2012년 국정감사에 불려와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고작 세 번의 질문만 받았다. 그 가운데 하나는, 설훈 민주통합당(현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부터 “호남석유화학은 ‘짜기’로 유명한 롯데 계열인데 이렇게 파격적인 거래를 하는가”였다. 오후의 식곤증에 장시간 무료함이 지속됐는데도 허 사장에게 질문하는 의원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어느 새 허 사장은 답변 태세를 완비하고 “설 의원께서 저희 그룹의 경영을 ‘보수적’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상당히 ‘사세 확장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대기업 사장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듯, 놀라운 언어순발력까지 과시했었다.

허수영 사장이 불려나온 것은 당시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에 대한 허와 실을 추궁하기 위해서였다. 이 또한 그룹 총수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아닌 사장단이 책임 있는 답변을 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문제였다.

국회가 재벌총수를 출석시키려다 실패해 사장 또는 임원이 대신 출석하는 경우, 국회 회의는 맥 빠진 모습을 보이기 일쑤였다. 의원들은 총수 아닌 사장과의 문답에서 얻을 게 별로 없다는 심정에 기껏 출석시킨 증인은 외면하고 다른 질문에만 매달렸다. 심지어 어떤 증인은 출석했다가 질문 한 번 못 받고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같은 행태는 의원들이 굳이 재벌 회장을 부르는 의도가 뭐냐는 비판을 초래했다. 국정현안을 캐려는 의도보다 재벌회장과 같은 거물을 불러내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를 높이려다 그게 뜻대로 안되니 맥 빠진 모습을 보인다는 지적을 자초했다.

그러나 현대차 그룹의 정재욱 본부장은 지금까지의 이런 모습과 전혀 다른 장면을 보여줬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의원들이 단지 그룹 총수를 불러내는 데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현안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의 설명이 절실히 필요함을 드러내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 정재욱 현대자동차 구매본부장(왼쪽)의 답변을 듣고 있는 성일종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이번 국정감사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의 출석이 불가피함을 강조한 성 의원은 자신의 질문 말미에 "현대자동차 그룹은 잘 나갈 때 훗날을 대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사진=장경순 기자.


15일 국정감사에서 나타난 이 같은 분위기를 바탕으로 정의선 부회장에 대한 국정감사 출석요구가 또 한 번 제기됐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향후 재벌 총수 출석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가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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