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연봉선수 선동열, 후배들에겐 어떤 '야구 산업'을 물려줄 건가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한국에서 제일 ‘집적거리기 좋은’ 사람이 국회의원이다. 무식한 사람이라도 남들 앞에서 국회의원을 욕하면 자신이 뭐 좀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풍토다.

이번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 감독의 국회 출석은 이런 구도를 맞춰 주기 딱 좋았다. 무엇보다 질문에 나선 몇몇 국회의원들의 안이한 태도가 역력히 드러났다.

그렇다면 문제가 원점으로 돌아가, 국회는 아예 선동열 감독을 부르지도 말아야 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야구계는 앞으로도 계속 병역면제 혜택을 자기들만의 불가침의 특혜로 누리도록 내버려둬야 하느냐다.

만약 이번 논란이 오로지 국가대표 선발에만 그쳤다면, 간섭하는 국회의원들이 되게 할 일 없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논란의 핵심은 공정한 병역의무다.

의무복무제를 시행하고 있는 한국에서 공평한 병역은 전 국민의 국가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핵심요소다. 스티브 유라는 가수에 대해 병무청이 입국금지 조치를 내릴 때 병무청은 군의 사기를 강조했다. 군의 사기뿐만 아니다. 국민의 공평한 병역에 대한 신뢰도 결부됐다.

따라서 병역의 공평성이 저해됐다고 비판받는 상황은 마땅히 국회가 나서야 될 상황이 분명하다.
 

▲ 11일 국회에 출석한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사진=뉴시스.


국회의원은 세상 모든 일에 간섭하는 것이 직무다. 원래 전공분야 한 두 개만 잘한다고 칭찬받기도 어렵다. 의원은 전공분야 뿐만 아니라, 자신이 대변하는 유권자의 이해가 걸린 것이라면 어디든 간섭을 해야 한다. 경제문제가 됐든 스포츠 문제가 됐든 전 영역을 커버해야 한다.

그래서 국회의원들이 지식 때문에 매우 불리한 입장에서 직무를 수행할 때가 많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회장이 지난 4월 미국 의회에 출석했을 때, 상당수 언론은 ‘(경제적으로) 무식한 의원들’이라는 식으로 접근했다. 국내에서도 컴퓨터 좀 안다는 사람들이 “이때다” 싶어서 자신들의 지식을 한껏 자랑하는 소재로 삼았다.

의회에서는 저커버그 회장이 미국 의원들을 때려눕혔는지는 모르지만, 페이스북은 지난 9월말 또다시 5000만 명의 고객에 해당되는 보안문제가 발생했다.

의회는 국민을 대행하는 권위로 이해 당사자들을 증언대에 불러 세울 수 있다. 하지만 그 권위를 가지고 모든 문제를 끝까지 해결할 수는 없다. 해결의 당사자들이 권위가 부족해 접근하지 못하는 영역의 문턱만 넘어주는 것으로 의회가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선동열 감독이 국회의원들을 압도하는 발언을 했다고 해서, 앞으로 야구 선수들의 병역을 이번 아시안게임과 똑같이 해결해도 된다는 것인가.

야구 국가대표가 병역과 무관했다면 국회가 전혀 간섭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병역과 관련이 됐다면, 국회는 그런 특권을 더욱 강화할 수도, 박탈할 수도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 권한의 보유자들이 국민을 대신해 의심을 하고 사람을 오라가라한 것은 당연한 권리고 의무다. 다만, 질문에 나선 의원들이 타율 2할도 안되고 평균자책 10점은 넘는 듯한 준비상태를 보인 것이 문제이긴 하다.

프로야구계와 선동열 감독은 국정감사만 잘 넘겼다고 만사태평할 일이 아니다.

선 감독은 자신이 최초로 연봉 1억 원을 넘긴 선수가 왜 됐는지를 알아야 한다. 선 감독이 프로야구에 입문하기 직전, 한국야구에는 스포츠에서 있을 수도 없는 추태가 벌어졌다. 당시에는 추태였지만, 지금 기준으로는 범죄였다.
 

유두열 선배 한 방 아니면 선 감독이 억대 연봉 선수 됐을까

한국시리즈에 먼저 진출한 팀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상대를 고르겠다고 시즌 막판 6점, 3점을 이기고 있던 경기를 일부러 실책과 헛스윙 등을 남발하면서 져버린 것이다. 팬들을 포함한 국민은 분노했다. 하지만 해당 구단의 고위층은 “감독의 선택을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1984년 군사독재 치하의 한국의 법과 도덕관념이 그 수준이었다. 낙후된 수준을 바로잡은 것은 당시 야구선수 유두열의 한 방이었다.

그로 인해 그해 한국시리즈는 기적적인 반전의 해피엔딩이 됐다. 더러운 승자를 노렸던 팀은 상대팀 유두열의 역전 스리런 홈런 한 방에 더러운 패자가 되고 말았다. 몇 년 후 야구해설자 김소식은 공중파인 MBC에서 야구중계를 하면서 이 때의 홈런을 “3000만을 감동시킨 홈런”이라고 발언했다. 당시 3000만이란 단어는 ‘전 국민’의 동의어였다.

만약 이 때 더러운 패자가 더러운 승자가 됐다면, 지금의 프로야구는 10개 팀은 커녕 출범 당시 6개 구단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야구에는 감동이 있고, 정의가 입증됐다는 것이 지금까지 야구팬들의 믿음이었다.

그런 배경이 있어서, 프로야구단 중 재정이 가장 열악했던 해태는 브라보콘을 팔아가면서 선동열 감독을 사상 최초 억대 연봉 선수로 만들었다. 아무리 실력이 출중해도 야구판 자체가 성장을 못했다면 브라보콘 아니라 그랜저, 에쿠스를 팔아도 억대 연봉은 불가능했을 일이다.

묘하게도 야구는 승부에서도 ‘정의로운 팀의 승리’가 여러 번 입증됐다. 1998년 호세 퇴장 후 롯데의 기적적인 승리도 그 가운데 하나다. 국민들이 가장 즐기는 스포츠가 된 것은 단순히 경기만 재미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야구 정의’에 대한 팬들의 믿음이 사상 처음 심각한 도전을 받은 것이 이번의 병역논란이다. 도쿄 구장 일본 왕세자 보는 앞에서 이승엽의 역전 투런, 미국 야구장 마운드에 세워진 태극기. 강민호의 패대기친 글러브와 곧 이은 병살처리 성공. 수 십 년간 선수들이 만들어낸 모든 감동이 이번 아시안게임 병역 논란으로 변색되고 말았다.

올해는 가뜩이나 시즌이 늦어져 11월에야 열리는 한국시리즈의 관중석이 어떤 모습일지 아마 야구관계자들이 무사태평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시안게임 이후 통계도 심상치 않다.

국회의원들이 만만하다 보니 세상사도 똑같을 것이라 여기고, 지금의 하루 5경기 전 경기 중계도 영구할 것이라 믿기 쉽다.

그러나 관중수의 본질은 TV중계의 시청률과 정(正)의 상관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시청률은 공중파나 케이블TV 모두 가장 중시하는 경영통계다. 시청률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3시간 넘는 중계를 ‘의리있게’ 지속할 방송사는 없다. 물론 지금까지는 그런 고민이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앞으로도 그럴 것이냐다.

선배 유두열의 정의의 한방 덕택에 사상 최초 억대 연봉선수가 된 선동열 감독이다. 그가 보여준 선택은 후배 야구선수들에게 어떤 프로야구 산업을 물려줄 것인가. 국회의원들과의 논쟁보다 그게 더 중요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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