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이 밥을 굶는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지난 4일 기내식 차질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들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환영하기 위해 노래와 율동을 연습하는 뉴스를 봤다.

54초 길이 동영상을 본지 3초 만에 입 안 가득 욕설이 쌓였다. 댓글 칸에 뭔가 한마디를 남기려고 하니 그래도 끝까지는 봐야 했다. 혹시 막판 대단한 반전이 있는 것이라면 말을 삼가야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차마 못 볼 것을 54초 동안이나 보고야 말았다.

한국의 젊은 여성들 목소리는 참으로 고운 것이다. 여인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떼창’을 부를 때 목소리가 어떤지 아는 사람으로서 이 승무원들은 지금 전혀 부르기 싫은, 하기 싫은 행동을 하려고 영혼을 방전시키고 있음을 확신했다.

사람 생각 저마다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안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에는 이렇게 전혀 생각이 다른 사람이 근무하는 것이 확실해졌다.

재벌회장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우리 같은 범부의 취향으로 판단하기는 참 어려운 면이 있기는 하다.

동영상을 보면서 첫 번째 분노의 물결이 지나간 다음에 두 번째로 찾아온 것은 의구심이다.

과연, 저 기괴한 환영의 당사자인 박삼구 회장은 저걸 보면서 좋아했을까.

보통사람이라면, 환영받는 당사자조차 민망하기 이를 데 없어 요즘 속어로 ‘닭살이 돋아 피부가 파열될 지경’이었을 것이다. 물론 재벌은 여염과 전혀 정서를 달리할 가능성이 있으니 박 회장 당사자 아니면 모를 일이다.

“다음부터는 이런 거 하지 마라”라고 말리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이해가는 면이 없지는 않다. 이렇게까지 민망하고 뻘쭘한 일을 자처한 젊은이들한테 “못 봐 주겠다”고 했다면 그 얼마나 마음에 상처가 됐을 것인가.

정상적인 판단력이었다면, 이들의 관리자를 불러 “고생했는데,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저런 거 못하게 해라”라고 좋은 말로 타일렀을 텐데, 워낙 대그룹 업무가 바쁜 터에 잊어버리지 않았나싶기도 하다.

뉴스에 따르면, 승무원들은 저 이상한 노래와 율동 말고도 누구는 눈물을 흘리고 누구는 안아달라는 임무까지 맡았다고 한다.

회장님에게 “한번만 안아 주세요”라는 말을 할 때 “한번만”은 빼야 한다는 지시도 받았다고 한다. 두 번 세 번 안아줄 수도 있는데 왜 한번만이냐는 것이다. CBS 뉴스쇼 인터뷰에서 신분을 가린 승무원이 한 말이다.

남의 집 귀한 딸을 채용해서 그 여성에게 자기회사 이윤을 부탁해야 할 기업인이 이게 뭐하는 짓이냐는 분노를 사기 딱 좋은 얘기다.

더 눈길이 가는 건 그런 모든 게 ‘지시’에 따랐다는 점이다.

이런 전근대적이고 몰상식한 일이 회사 내 규범화돼서 발생됐다는 매우 한심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박 회장의 실제 취향이 어떤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다만 그렇고 그런 시대를 살아온 한국의 중년남성으로서 더 환상적이고 뒤탈 없을 자리를 얼마든지 찾아갈 수 있는 재력의 소유자가 젊은 여직원들하고 ‘허그’를 탐닉했을 거 같지는 않다. 물론 사람 취향은 저마다 다를 수 있긴 하다.

어떻든 이 모든 것이 지시에 의한 것이라면, 그 지시로 인해 이 거대한 기업의 총수는 취향이 대단히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승무원들이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는 변명도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우선 저 또래 젊은이들 가운데 자발적으로 저러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될지 의심스럽다.

정말로 자발적이었다 하더라도 저 흉물스런 연출을 지켜본 중간간부들은 절대 못하게 말리지 않고 뭘 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단 5초도 보기 힘든 장면을 자기회사 회장 앞에 잘한 일이라고 들이댈 수 있는 저 판단력으로 지금 아시아나항공이 운영되고 있다.

이 회사 항공사의 승객들이 밥도 못 얻어먹고 있는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기자회견장에서 느닷없이 경쟁항공사를 언급했다가 매를 더 맞는 모습으로 보면, 판단력의 문제가 총수로부터 시작되는 듯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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