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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도 엘리베이터를 독점하던 조양호 회장의 수행원들

기사승인 2018.04.20  15:2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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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전용'도 사라진 '민의의 전당'에서 '회장님 전용' 급조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재작년의 일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국회에 출석했다. 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내내 앉아 있다가 오후 5시쯤 더 이상 국회의원들의 질문이 없음을 확인하고 퇴장했다.

이 때는 조 회장보다 조 회장의 제수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에 대한 비판여론이 폭발할 때다. 한진해운의 구조조정 소식을 미리 빼내서 회장이 먼저 주식을 팔아치운 행위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필요성을 새삼 불러일으켰다. 조양호 회장은 경영을 모르는 제수로부터 이미 엉망이 된 회사를 돌려받았다는 약간의 동정도 받고 있던 때다.

조 회장이 국회 회의장을 나서자 몇몇 기자들이 그를 따라붙었다. 장시간 국회 회의 동안에는 의원들이 아니면 아무도 출석 증인에게 말을 걸 수 없다. 질문할 것이 많았던 기자들이 2분 남짓한 이동시간에 다가간 것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기자들은 조 회장과 함께 타려고 했다. 이 때 그를 수행하던 한진그룹 직원들이 기자들을 막아섰다.

국회의장도 독점 못하는 국회 엘리베이터를 일개 증인과 수행원들이 독점한 것은 2004년부터 국회를 취재한 이래 전혀 본적이 없는 광경이었다. 원래 국회에 의원전용 엘리베이터가 있기는 했지만, 사실상 명목만 남은 의전이었고 그나마 2004년 철폐된 지 12년이 지난 때였다.

여기가 한진그룹 본사인 것으로 착각하는 수행원들의 안하무인이 밉쌀 맞기 이를 데 없었다. 이런 볼썽사나운 소란행위는 국회 경위들이 적발할 경우 바로 단속대상이 된다. 이렇게 되면 이들이 모시는 회장은 오히려 공연한 망신만 겪게 된다.

이 때 마침 바로 옆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두 명의 여기자가 순발력 있게 이를 놓치지 않고 올라타 조 회장을 따라갔다. 앞서 수행원들에게 “아유 왜 이래”라면서 제지받았던 남자기자는 씩 웃으면서 발걸음을 회의장으로 다시 돌린 뒤였다.

1층 주차장까지 조회장을 따라간 두 여기자는 마침내 차에 올라타기 직전 조 회장과의 짧은 인터뷰에 성공했다. 그는 국민들에게 송구하다는 말을 한 번 더 남겼다. 조 회장이 출발하자 수행원들은 차를 향해 영화장면 같은 깊은 예의를 표시했다.

수행원들의 이날 추태는 국회 경위들에게 적잖은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듯 했다.

두 달후 열린 최순실 국정관련 농단 청문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총수들이 대거 출석했다. 한진그룹 회장 한 사람만도 대단히 유별난 ‘의전’을 과시했는데 이렇게 회장들이 우루루 출석하니 수행원들의 목불인견은 얼마나 대단할지 모를 일이었다.

회의가 저녁식사를 위해 잠시 정회를 하면서 회장들이 이동할 시간이 임박하자, 수행원들이 저마다 들썩거렸다.

이 때 국회 경위가 나서서 분위기를 장악했다. 회의장 문이 열리기 몇 분전, 그는 “그룹에서 나온 수행원들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며 “비서실 직원들은 기자들이 접근하더라도 무리해서 차단하려고 하지 말고 자연스러운 이동이 되도록 해 달라”고 강조했다.

덕택에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해 총수들은 차에 올라탈 때까지 저마다 무수한 기자들의 질문을 들으면서 이동했지만, 그룹 본사건물에서처럼 처신하는 비서실 직원들은 아무도 없었다.

앞서 조양호 회장의 출석도 냉정히 따지면, 그렇게 억지로 기자를 떼놓는다고 해서 조 회장이나 한진그룹에 이로울 것도 없었다. 조 회장은 오히려 끝까지 따라온 두 여기자를 통해 간곡한 사과의 마음을 한 번 더 국민들에게 전할 수 있었다.

대기업 본사를 상주출입한 적은 없어서 그룹 회장에 대한 의전이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까지 수행원들이 안하무인으로 행동한 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추태다.

배울 만큼 배워서 재벌회장 측근이 된 사람들이 어찌 저리 멍청한지 한심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런데 최근 대한항공 총수 일가에 대한 기사가 연일 나오면서 이들의 추태에 대한 설명을 얻게 됐다. 용납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지만 어쩌다가 그리 됐는지는 좀 이해가 갔다.

뉴스들을 종합해서 판단하면, 조 회장 일가의 측근들이 매순간 합리적인 판단으로 임하기는 극히 어려워 보인다. 재벌 회장일가커녕 최소한의 가정교육만 받았어도 상상하기 힘든 욕설과 돌발행동이 난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되면 사람의 자체적인 판단은 불가능하다. 오로지 미리 입력된 극히 제한된 행동만이 가능할 수밖에 없다. 이곳이 그룹본사인지, 국회인지도 따질 여유가 없다.

떠나는 회장 차를 향해 깊숙이 예를 표하던 사람들을 당시에는 “무슨 영화 찍냐”라고 속으로 조롱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3분도 안되던 그날의 이동시간이 이들에게는 무수한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었음을 뒤늦게 이해하게 됐다.

 

 

장경순 기자 folkdragon@daum.net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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