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 통찰력<시리즈 45>...빼기의 미학

▲ 김병희 교수

[초이스경제 외부 기고=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국가를 경영하는 대통령을 비롯해 기업의 경영자들은 연설할 기회가 많다. 학교 선생님과 반장은 물론 어떤 모임의 장에 이르기까지, 대표를 맡은 분들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야 할 경우가 많다. 싫어도 해야만 하는 연설. 천편일률적인 내용이 많아 주목을 끌기도 어렵다. 너무 많은 말을 해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도 모르겠는데, 연설이 끝나면 으레 박수까지 쳐야 한다. 의례적인 연설에 예의상 치는 박수갈채에 감동이 있을 리 없다.

 “많은 단어로 적게 말하지 말고 적은 단어로 많은 것을 말하라”
  유대인의 지혜서로 알려진 '탈무드(Talmud)'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Less is more”

모더니즘을 표방하는 현대 건축의 핵심 철학이다. 여러 예술 영역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이 경구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정확히 번역해 내기 어렵다. “적을수록 더 많다”, “더 없는 것이 더 있는 것”, “간결한 것이 더 낫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듯. 뺄 수 있을 때까지 복잡한 요소를 다 없애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단순성을 추구하는 현대 광고에서도 더하기(+)가 아닌 ‘빼기(-)의 미학’을 강조한다.

 
 
▲ 뷰티테크 인쇄광고 '털 서체' 시리즈 (2014) /사진=김병희 교수

뷰티테크(BeautyTech)의 인쇄광고 ‘털 서체’ 시리즈(2014)는 빼기의 미학이 무엇인지 한 눈에 느끼도록 한다. 레바논 베이루트의 임팩트비비디오(ImpactBBDO)에서 일하는 아트 디렉터 조지스 키릴로스(Georges Kyrillos)는 광고에서 불필요한 군더더기는 다 빼버렸다. 털을 없애는 제모 브랜드의 특성을 살려 피부 색깔을 광고의 배경으로 삼아 카피 한 줄씩만 남겼다. “수영할 맘이 사라지네(I’m too cold to swim)” “치마를 못 입겠어(I can’t stand skirts)” “오늘 밤엔 안 되겠어(I can’t tonight)”

카피의 서체를 우리 몸의 털처럼 제시하고 뷰티테크라는 브랜드 이름 아래에 “영구 제모(permanent hair removal)”라는 슬로건을 넣어 털과 관련된 여성들의 고충을 제모 브랜드와 연결시켰다. 제모 광고에서 자주 보던 여성의 매끈한 다리가 없어도 털처럼 삐쭉삐쭉 튀어나온 카피가 브랜드의 특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 빅펜 인쇄광고 '책' 시리즈 (2014) /사진=김병희 교수

빅(BIC) 펜의 인쇄광고 ‘책’ 시리즈(2014)에서도 펜의 특성을 간명하게 전달했다. 지면 전체에 펜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지만 실로 엄청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잉크가 줄어든 부분 바로 밑에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알만한 책 제목이 적혀 있다. '성경',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해리포터',  '왕좌의 게임'  같은 위대한 작품들이 조그마한 펜으로 완성됐다는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 브라질 상파울로에 있는 마이애미 광고학교(Miami Ad School)의 아트 디렉터 루안 알메디아(Luan Almeida)의 감각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사람들의 생각을 담은 세상의 모든 글이 펜 끝에서 시작돼 작품을 완성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손색이 없다. 빅(BIC)이라는 브랜드가 널리 알려진 마당에 이 펜의 특성을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모두 제거해버리고 펜과 작품명만 남긴 것. 그래서 적을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아젤소 아이스크림 인쇄광고 '과일' 시리즈 (2018) /사진=김병희 교수

아젤소(Ajellso) 아이스크림의 인쇄광고 ‘과일’ 시리즈(2018)도 더 없는 것이 더 있는 것이라는 금과옥조를 알려 주기에 충분하다. 브라질의 아트 디렉터 브루노 히렐(Bruno Hilel)은 감각적인 레이아웃을 선보였다. 레몬, 코코넛, 파인애플 조각에 아이스크림의 바를 살짝 꽂은 사진을 광고 지면의 거의 전체에 크게 배치함으로써 전달하고자 하는 말을 다 해버렸다. 더 이상 뺄 수 없을 때까지 군더더기를 제거하자 핵심 메시지만 남았다. 단순할수록 더 좋은 디자인이 탄생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지면의 오른쪽 하단에 있는 “과일 맛 나는 아이스캔디(Popsicle with taste of fruit)”라는 슬로건을 빼버려도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이다. 광고에 등장한 과일 조각이 핵심 아이디어인데, 지금 당장이라도 아이스크림의 맛과 품질을 느껴보고 싶게 한다. 간명한 레이아웃에서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다.

“Less is more”

이 한 마디로 광고의 구조를 설명할 수 있으리라. 이 경구는 현대 건축의 3대 거장의 한 사람으로 존경받는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 1886-1969)가 1947년에 미니멀리즘 건축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썼다는 식으로 자주 인용되고 있지만, 사실은 다르다.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 1812–1889)이 1855년에 발표한 시 '안드레아 델 사르또(Andrea del Sarto)'에 등장했다. 그 시대에 완벽한 예술가라는 평판을 얻었던 화가 안드레아 델 사르또(1486-1531)를 묘사한 내용이라 '나무랄 데 없는 화가(The Faultless Painter)'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는 시다. 필자가 다시 확인해보니 이 시의 78행에 “Well, less is more, Lucrezia…”라는 대목이 나온다.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이 말을 창조하지는 않았고 브라우닝의 시에서 발견해 차용했던 것.

이 경구는 여전히 여러 분야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이 경구를 바꿔 “단순한 것이 최고이며 최고는 단순하다(Simple is the best. The best is simple)”는 디자인 철학을 늘 강조했다. 애플은 이 디자인 철학에 혁신적인 기술력을 접목시켜 2001년에 인류사를 바꾼 아이팟(iPod)을 출시했다. 중국 명나라 때의 문인화가 동기창(董其昌 Tung Ch'ich'ang, 1555-1636)도 ‘소중현대(小中現大)’를 강조했다.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드러낸다는 동기창 화론(畫論)의 핵심이다.

앞으로 너무 복잡하고 장황한 연설은 경계할 필요가 있겠다. 단어들이 콩케팥케 뒤섞여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없게 연설할 바에는 차라리 말을 적게 하는 편이 낫겠다. 어찌 말 뿐이겠는가.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것이 늘 최고는 아닐지라도, 최고는 늘 단순하다. 이 글도 어쩌면 너무 길게 쓰지 않았나 싶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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