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 통찰력<시리즈 44>...타이밍이 중요하다

▲ 김병희 교수

[외부 기고=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정말로 약이 되는 말이라는 건 알지만 그때는 귀에 거슬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다. 제품 자체는 너무 좋은지 알겠는데 왠지 앞서 구매하기가 꺼려지는 경우도 많다. 세상보다 앞서간 탁월한 제품이나 기술이 시장에서 외면 받고 실패한 사례는 너무도 많다. 세상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니, 타이밍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일에 속도 조절이 필요한 이유다.

1993년에 펩시에서 선보인 무색콜라(clear cola) ‘크리스털 펩시’도 제품 자체는 좋았지만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짙은 갈색 음료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에게 카페인과 색소 없는 무색 콜라가 건강에 좋다고 강조했지만 고정관념의 벽을 넘지 못했다. 처음에는 약간의 인기도 얻었지만 콜라의 원래 이미지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외면해 결국 시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 크리스탈 펩시 텔레비전 광고 '지금'편 (1993) /사진=김병희 교수

크리스탈 펩시의 텔레비전 광고 ‘지금’ 편(1993)을 보자. 광고가 시작되면 아이 두 명이 물속에서 움직이는 가운데 “지금 자연은 과학보다 더 나은 것에 투자하고 있습니다”라는 자막이 떠오른다. 광고 전체에서 어떠한 내레이션도 없이, 배경 음악으로 밴 헬런(Van Halen)의 '지금(Right Now)'이 계속 흐르는 가운데 자막만 등장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시계와 함께 “지금 미래가 당신보다 한발 앞서갑니다”라는 자막이, 지구 표면을 떠도는 우주인과 더불어 “지금 당장 카페인이 없어도 좋아”라는 자막이 흐른다. 꽃들 사이로 “지금 우리 모두는 뭔가 다른 것에 목마르다”가 나오는가 싶더니, “지금 당신은 당신이 왜 아무것도 볼 수 없는지 궁금해 합니다”라는 단독 자막이 떠오른다. 펩시 병이 물속으로 떨어지며 크리스탈 펩시를 소개하는 자막이 큼지막하게 등장하자, 여성은 “지금은 분명히 다르다”는 무색 콜라를 마시고, 운동하던 남성이 콜라를 마시자 “지금 누군가 미래의 맛을 막 마시고 있다”는 자막이 뜬다. “이런 맛 처음이야(You’ve never seen a taste like this)”라는 자막으로 마무리하며 광고가 끝난다.

이 광고에서는 음료 광고의 감성적 카피가 아닌 투박한 스타일의 카피를 썼다. 무색 콜라의 소비자 혜택을 강조하기보다 콜라의 역사를 새로 바꾼다는 식으로 호소했다.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접근법. 투명한 무색 콜라는 혁신 상품이라 화제를 모았지만 소비자들은 구매하기를 망설였다. 기존 입맛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은 크리스탈 펩시가 일반 콜라보다 밍밍한 맛이라며 어색하게 받아들였다. 기존의 콜라와 다른 혁신 제품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지금 누군가 미래의 맛을 막 마시고 있다(Right now someone just got a taste of the future)”라는 카피까지 썼지만, 소비자들은 귀담아 듣지 않았고 결국 출시 1년 만에 시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마케팅 실패 사례는 ‘카산드라 증후군(Cassandra syndrome)’으로 설명할 수 있다. 분명히 좋은 제품인데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 아무도 설득시킬 수 없다면 카산드라 증후군에 감염된 것이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싸웠던 트로이에 카산드라라는 미녀 공주가 있었다. 공주는 아폴론에게 예언의 능력을 받았지만 그의 사랑을 거절한 대가로 설득력을 빼앗겼다. 공주는 트로이 전쟁을 예언하며 그리스군이 남겨둔 거대한 목마가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지만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목마가 성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는 그녀의 예언을 무시한 트로이는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전쟁 후 그리스군의 총사령관인 아가멤논의 전리품이 된 공주는 귀국하면 죽을 것이라며 그를 설득했지만 무시되었다. 귀국 후 아가멤논은 아내에게 살해되었고 카산드라도 함께 죽임을 당했다. 카산드라의 예언처럼 진정성이 느껴지는 좋은 제품이라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 펩시가 케빈 스트랄레에게 보낸 편지 (2015) /사진=김병희 교수

2015년 3월, 크리스탈 펩시의 열성 팬이었던 케빈 스트랄레(Kevin Strahle)는 비스트(L.A. Beast)라는 트위터 계정으로 크리스탈 펩시의 복귀 청원 운동을 시작해  3만7000 여명의 서명을 받았다. 그리고 유통기한이 20여년이나 지난 크리스탈 펩시를 마시고 토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6월에는 공원에서 크리스탈 펩시의 지지자 모임도 개최했다. 열성 팬의 적극적인 활동에 감동한 펩시는 2015년 6월 8일 케빈 스트랄레에게 공식적인 서한을 보냈다. 2015년 11월에 펩시는 자사의 트위터 페이지에 크리스탈 펩시의 재 출시를 암시하는 메시지를 올렸다. 그 후 펩시는 2016년 7월 이후 캐나다와 미국에서 크리스탈 펩시를 한정된 기간 동안 판매한다고 발표했다. 마치 카산드라의 예언 적중에 후세 사람들이 열광했듯이, 크리스탈 펩시는 2016년부터 시장에서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 크리스탈 펩시 텔레비전 광고 '컴백'편 (2017) /사진=김병희 교수

크리스탈 펩시의 텔레비전 광고 ‘컴백’ 편(2017)은 2015년 3월에 크리스탈 펩시의 복귀를 호소하는 트위터 청원 운동이 시작된 이후에 나온 펩시의 공식 광고다. “1990년대를 사랑하자”는 자막으로 시작한 광고에서는 1990년대와 관련된 이런저런 메시지가 전체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크리스탈 펩시콜라 병이 클로즈업되고, 스마트폰이 아닌 1990년대의 전화기를 이용해 전화하는 여성도 등장한다. 주주(Juju)는 크리스탈 펩시를 좋아한다는 자막에 이어, “1990년대에는 모든 게 더 좋았다”는 자막이 당시의 AT 컴퓨터 화면에 등장하고, 투박한 시계와 함께 “한정된 시간 동안”이라는 자막이 흐른다. 다음 장면에서 크리스탈 펩시를 1990년대의 제품으로 소개하고 나서, 돈(Don)은 크리스탈 펩시가 계속 생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마지막에 “1990년대를 맛볼 마지막 기회(Last chance to taste the 90s)”라는 자막이 나오며 광고가 끝난다.

너무 뒤처져도 문제지만 너무 앞서가도 제품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카페인이 없어 무색 콜라가 건강에 좋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기존의 콜라 색에 고착된 소비자들이 마음을 열지 않았던 1990년대의 사례는 깊은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만약 웰빙을 강조하던 2010년쯤에 크리스탈 펩시의 신제품이 나왔더라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났으리라. 그래서 경영자의 여러 가지 의사결정에서 속도 조절이 가장 중요할 수 있는 법. 우리네 인생이나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그 말은 그때 했어야 했고, 그 말은 그때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을, 우리는 안타깝게도 나중에 가셔야 불현듯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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