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이 긴 연휴, 고전에서 현실적 교훈을 찾고자 한다면

[초이스경제 장경순 만필] 사상 유례없이 긴 연휴를 맞이해서 독서에 뜻을 세우는 사람도 있다. 특히, 분량이 막대해서 함부로 집어들 엄두가 안 났던 동양의 고전 삼국지 일독에 나서 볼만도 하다. 마침 PC 게임 삼국지의 최신 시리즈 삼국지13 파워업키트가 한글로 나왔다고 한다. 소설 삼국지나 역사 삼국지를 알고 하면 더욱 흥미가 높아진다.

역사소설은 실제 역사에 이야기를 가미한 것이니 독자들은 실생활의 교훈이나 지혜를 얻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소설 삼국지연의의 방대한 분량을 가장 많이 장식하는 사람은 제갈량이다. 삼국지연의는 184년 황건적의 난으로부터 시작해 280년 오나라의 멸망과 진나라의 통일로 끝난다. 제갈량이 오장원 진중에서 사망한 234년까지가 50년, 그 이후가 46년이다. 시간으로는 제갈량 생전과 사후가 거의 50대 50이다.

그러나 삼국지연의 분량으로는 제갈량 생전이 90%를 차지한다. 저자인 나관중이 제갈량 사망과 함께 집필의지를 거의 잃어버린 듯한 모습이다.

나관중의 천재적인 글 솜씨로 수많은 영웅들이 위인도 되고 악당도 됐지만, 제갈량은 위대한 인물 정도가 아니라 수 십 리 떨어진 곳에 있는 적장의 속마음을 다 읽을 수 있는 귀신같은 능력을 가졌다. 없는 바람을 불러내는 호풍환우도 가능하도록 신격화가 되고 있다.

또 삼국지연의의 제갈량으로 인해 역사 속 영웅들은 모두 매우 특별한 책략가를 고용해 전적으로 그에게 책략을 의지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도 생겼다. 심지어 한국에서 조선개국사를 얘기할 때, 정도전이 없었으면 이성계는 아무것도 못했을 사람으로 간주하는 풍조가 이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유비든 조조든 실제 역사속의 영웅 군주들은 그 자신이 명장과 책략가의 면모를 상당 수준까지 갖췄다. 한고조 유방의 예를 든다면, 당대의 책략가인 장량과 역이기의 의견이 엇갈렸을 때, 한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은 어디까지나 유방의 몫이었던 것이다.

이성계 역시 정도전의 몇 가지 기발한 발상은 수용하되,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거나 본말이 전도된 발상에서 나온 과격한 제안을 모두 물리친 것은 왕인 자신의 판단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
 

▲ 제갈량 사당의 모습. /사진=뉴시스.


수석책략가라는 지위를 극도로 부각시킨 제갈량이란 존재는 사실 나관중 본인이 세상에 나가서 해보고 싶었던 꿈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나관중은 글 쓰는 재주는 있었지만, 관직에 나가는 능력은 매우 떨어졌던 모양이다. 여러 차례 과거에 떨어지고 전업 작가로 생을 보냈다.

만약 자신이 세상에 출사한다면 어떤 인물이 되려고 했는지 그의 포부가 담긴 인물이 바로 제갈량이다. 그래서 자신의 솜씨를 가장 많이 부려가면서 다듬은 캐릭터가 제갈량이다.

이런 식으로 문인들이 사극 속의 특정인물에 자신의 희망사항을 담는 경우는 나관중과 제갈량 뿐만 아니다.

강희대제-옹정황제-건륭황제의 제왕3부곡을 쓴 이월하 역시 오사도라는 작중 인물을 자신의 대변인처럼 다루고 있다. 오사도는 옹정황제의 책사라는 점에서 제갈량과 위치가 비슷하다. 다만 차지하는 비중이 제갈량보다는 작고 흐름을 결정적으로 바꾸는 역할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제갈량처럼 선지자 같은 관점에서 세상 만물을 내려다보고 자신만이 옳다는 자부심을 절대 감추려들지 않는 점에서 상당히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

문인들이 역사소설 속에 또 하나의 자신으로 집어넣는 인물은 이렇게 지적인 우월감으로 가득하다.

이런 심리에서 만들어진 인물이 제갈량이니, 삼국지에서 다른 인물은 몰라도 절대로 제갈량만큼은 닮으려하면 안되는 것이다. 아무리 긍정적 방향이라 해도 이미지가 가장 많이 왜곡돼서 현실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삼국지연의 속의 제갈량은 실제 역사 인물 제갈량이 아니라 나관중의 꿈속에 있는 가상인물에 더 가깝다는 얘기다.

나관중보다 시대를 앞선 인물인 두보는 촉상이란 시를 통해 제갈량 사당을 방문한 소감을 남겼다. 소설인 삼국지연의가 나오기 전, 제갈량이 중국인들에게 어떤 인물로 남아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시다.


양조개제노신심(兩朝開濟老臣心) 어린 임금을 새로이 섬김은 늙은 신하의 마음이로다

출사미첩신선사(出師未捷身先死) 출사하여 성공을 이루기 전에 몸이 먼저 죽으니


이른바 신기묘산(神機妙算)하는 초인적 천재 제갈량으로서가 아니라, 죽는 날까지 선주 유비에게 받은 은혜를 후주 유선에게 갚으면서 살아간 노신의 외길 인생을 전하고 있다.

삼국지에서 현실감 가득한 교훈을 얻고자 한다면, 오히려 제갈량 사후의 나머지 10% 분량에 흥미를 가지고 읽어볼 것을 권유한다. 저자 나관중이 대부분 흥미를 잃고 대작의 마무리를 서두르다보니 앞부분 가득했던 과장이 거의 사라지고 담담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그 이전까지는 마치 미국 프로레슬링처럼 누구는 확실히 선역이고 누구는 악역이라는 식으로 얘기가 진행되지만, 제갈량 사후에 이르러서는 누구도 절대 선인이고 악인이 아닌 입장에서 대륙전체의 패업을 진행해 간 과정이 소개된다. 물론 그럴 거면 정사를 읽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박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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