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튀 시비' '못 나가게 막기'로는 떠나는 사람 못 잡는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지금부터 17년 전 이 무렵이다. 모 일간지의 A기자는 일요일 집안 일 때문에 지방으로 가고 있었다. 그는 당시 금융감독위원회(지금의 금융위원회)를 출입하고 있었다.

차안에서 회사전화를 받고 그는 즉시 차를 서울로 돌려야했다. 그가 출입하는 금감위에서 어마어마한 뉴스가 나왔다는 것이다. 경제지는 말할 것도 없고 종합지에서도 기준에 따라 톱으로 다룰 내용이었다.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가 대우자동차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한다는 것이었다. 이 내용이 통신을 통해 오후 12시에 나왔으니, 조간신문들의 월요일 아침 신문에 실려야했다. 신문에 이 내용이 없다면 독자들은 ‘낙종’, 즉 ‘물먹은 신문’으로 간주할 것이 뻔했다.

A기자는 부랴부랴 서울로 와서 뒤늦은 취재에 매달리면서, 겨우겨우 기사를 썼다. 휴일날 이렇게 난데없이 ‘폭풍취재’를 해야 하는 건 A기자뿐만 아니었다.

금감위 출입기자 가운데 전날인 토요일의 ‘출입기자 세미나’에 불참한 기자들은 모두 같은 신세였다. 금감위원장이 이같은 사실을 밝힌 게 바로 이 세미나 후의 식사자리였기 때문이다.

다음날, 내가 출입하고 있던 한국은행 기자실에서는 밤사이 격전을 치른 ‘저쪽 동네’ 금감위 기자들에 대한 작은 방담이 벌어졌다. 거의 한군데도 빠짐없이 모든 신문이 대우자동차를 크게 다뤘지만, 기자가 세미나에 있었던 회사와 아닌 회사는 쉽게 구분이 됐다. 충실한 도표와 함께 입체적으로 내용을 다룬 신문과 다급히 사실 전달에만 주력한 신문으로 그 회사 기자가 그날 어디 있었는지가 드러났다.

중요한 결정사항이 기자회견도 아닌 ‘친목’ 차원의 세미나 뒷풀이에서 나온다는 건 분명히 경우에 크게 어긋난 일이긴 하다. 오늘날의 취재문화에서는 이런 세미나가 기자들에 대한 부당한 대접 시비를 초래할 때도 있다. 아무튼 당시에도 장관급이나 되는 금감위원장이 명백히 처신을 잘못했던 것이다.

17년 전의 일에 대한 시비를 새삼 다시 따지는 건 크게 의미 없지만, 고위당국자가 이런 엄청난 말실수를 한 데는 당시의 절박한 상황요인이 좀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로 국가부도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는 거의 절망수준이었다. ‘금 모으기 운동’과 같은 국민적 에너지를 결집하면서 온 나라가 극복에 나선 결과 1998년부터 다시 희망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겨우 다시 살아나는가 했을 때, 1999년의 대우그룹 부도는 제2의 충격파였다. 대우계열사들 처리를 해야 하는데,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은 예전처럼 다른 재벌들에게 대우 회사들을 쉽게 떠넘길 수도 없었다. 그래도 그럭저럭 굵직한 계열사들 처리가 마무리됐다 싶을 때, 또 하나의 충격이 덮쳤다.

대우자동차를 7조7000억 원이라는, 한국에게 매우 다행스런 조건으로 인수하겠다고 나섰던 포드가 포기를 선언했던 것이다.

힘들게 겨우겨우 마련한 대우수습 방안의 알맹이가 다 사라질 만한 충격이었다. 대우의 채권은행들을 감독하는 금융당국은 매일 대우자동차 해결방안을 묻는 기자들 취재공세를 받고 있었다.

이 때, 앞서 우선협상자 선정에서 포드에게 고배를 들었던 GM과의 접촉에서 당국이 제법 성과를 얻어냈던 모양이다.

그 때문인지, 문제의 기자단세미나를 가기 전부터, 금감위원장의 기분이 ‘업’돼 있었다. 식사자리에서도 몇몇 기자들의 재담이 더욱 분위기를 끌어올렸던 모양이다. 덕담 속에 은근히 현안 질문을 섞는 문답이 오고갔다. 금감위원장 입에서 “LOI라는 건 들어봤어?”라는 ‘자랑질’이 나오면서 마침내 이틀간의 취재소동이 시작됐다.

포드가 일방적으로 손을 놓은 상태에서 만약 대우자동차 매각이 끝내 실패했다면, 한국은 이른바 ‘IMF 극복’ 일정에 엄청난 차질을 빚었을 것이 뻔하다. 다음해 이뤄냈던 국제통화기금(IMF) 차관의 조기 상환, 국민소득 1만달러 회복 등 모든 차후의 경제이정표에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GM대우의 탄생에는 이런 역사가 담겨있다.
 

▲ 사진=GM대우 홈페이지.


동업이란 것이, 동업자 모두가 불만을 갖고 우정을 상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한국과 GM의 관계도 지금 그런 모습이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는 GM의 대우자동차 철수 문제가 제기됐다. GM대우가 산업은행에 대출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하자 GM홀딩스를 통해 자금을 조달했는데, 매우 높은 금리조건이었다. 한국에서 장사한 돈으로 자기 계열사 배를 채워준다는 시비를 초래하기 충분하다.

지상욱 바른정당 국회의원이 GM대우가 공장 부지를 담보로 제시했는데도 대출을 거절한 이유를 묻자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공장부지가 담보가 되면 한국에서의 철수를 용이하게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지상욱 의원은 “산업은행이 GM 철수를 기정사실화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국자본에 매각된 국내 기업에 대한 ‘먹튀’ 논란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대우자동차와 GM의 관계는 정서를 자극하는 이런 식의 접근과 달라야 하지 않을까.

어찌됐든, 포드가 일방적으로 손을 놓은 절망적 상황에서 시작된 동업이 17년을 이어왔다. 인천지역에서는 현재 GM의 철수 여부가 지역 경제 전체의 최대 관심사다.

한국으로서는 GM대우 유지보다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 사정이고, 사업하는 사람이 떠나고 싶다면 그것을 막을 길은 없다. 산업은행이 이사 3명 선임권을 갖고 있고 또 무슨 장치가 있다한들, 마음이 떠났다면 무슨 수로 막을 것인가.

더욱이 현재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특히 자동차기업들이 미국 내 생산을 늘리지 않으면 국경세를 물리겠다는 엄포를 놓고 있다.

그래도 GM대우가 유지되기를 바란다면, 한국으로서는 여전히 GM대우 사업을 계속 해나가는 것이 GM에도 유익하다는 점을 이해시키는 것뿐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사례에서 이런 노력이 ‘먹튀 외국기업 배 채우기’ 시비를 거쳐 정치 공세의 소재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의 손발을 묶는 주요인이다.

17년 전, 다급했던 상황에서 탄생한 GM대우라는 점은 전혀 무시하고, ‘올 때는 마음대로 왔지만 갈 때는 마음대로 못 간다’는 식의 적대감만 쌓는다면, GM이 정말 ‘먹튀’에게 팔아넘기고 떠나도 할 말이 없어진다.

경제에서는, 나가고 싶은 사람을 잡는 방법은 계속 있고 싶게 만드는 것 뿐이지, 못 나가게 잡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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