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유승민 바른정당 대통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특히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후보다. 이는 기자가 누구에게 투표하느냐와는 전혀 무관한 얘기임을 강조한다.

국회에서 13년째 재정과 금융에 관한 의정을 취재해오는 동안 두 후보는 대단히 인상적인 장면을 수없이 만든 사람들이다. 경제분야에서 확실한 입지를 갖춘 훌륭한 인재들이 대통령 후보의 반열에서는 어디까지 역량을 아낌없이 발휘할 것인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인 평가는, 두 사람 모두 오랜 세월 취재했음에도 여태 발견하지 못한 또 다른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는 호평을 우선 제시한다. 이와 함께 두 후보의 기량 발휘를 제한하는 저마다 상황이 있음이 엿보인다.

이 글에서 유 후보에 대해, 다음 글에서는 심 후보에 대해 짧은 소견이나마 제기해 보기로 한다.

유승민 후보의 모습은 2004년 국회 정무위원회의 초선의원 때나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아직 새누리당(지금의 새누리당이 아닌 자유한국당의 전신) 소속이던 지난해 국정감사 때만 해도 그랬다.

중간고사 수학을 망쳐서 집에 왔을 때, 명문대 다니는 형이 두 번 다시 그런 시험 망치지 않게 머리에 쏙쏙 이치를 집어넣어주지만, 눈물 콧물이 쏟아지게 온갖 서러운 핀잔을 다 주는 듯한 그의 명쾌한 예리함은 어디가지 않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는 ‘최순실 국정농단’이 드러나기 전이었지만, 유승민 의원은 여당의원이면서도 야당보다 더 날카롭게 박근혜 정부의 경제혼선을 비판했다. 그의 예리한 언변은 대통령 후보가 돼서도 여전하다.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이 진행한 25일 대통령후보 공개토론에서 그는 여전히 심상정 후보와 함께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는 평가다.
 

▲ 유승민 바른정당 대통령 후보(오른쪽)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사진=JTBC 뉴스 화면캡쳐.


본질과 무관한 촌평을 덧붙인다면, 예리한 언변이 여전한 것과 달리 화면에 비친 그의 모습은 어쩐지 예리함보다 중후한 풍모의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 같을 때가 있었다. 피로누적 때문인가 한다.

대통령선거는 후보 한 사람이 전국을 다 다니니 개인이 감당하는 피로도는 이루 말할 것이 없다. 거기다 유 후보는 현재 상당한 정신적 에너지를 추가로 소모하는 상황이다. 다른 당도 아닌 바른정당 일부에서 후보의 거취를 거론하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전날 유 후보는 이런 의논을 하는 의원총회에 참석하려고 강원도 유세현장에서 급히 달려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출마했을 때, 새천년민주당 일부 세력이 후보 단일화를 위한 노무현 후보의 퇴진을 요구한 적이 있다. 이것은 노 후보와 지지층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는 비판을 초래했다.

그나마 노 전 대통령은 단일화 대상이 명확했다. 지금의 유 후보는 그 단일화가 어떤 단일화인지도 모호한 요구에 직면해 있다.

“선거란 정당에게 당선여부 뿐만 아니라 그밖에 더 많은 의미를 갖는다”는 심상정 후보의 발언처럼 바른정당은 이번 선거를 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규정하는 계기로 만들 수 있다. 이런 논리에서는 바른정당이 단일화에 나서더라도 대상은 크게 좁혀진다.

하지만, 바른정당에서는 보수 연대나 당선 가능성을 염두에 둔 복잡한 연대 주장도 나온다.

어떤 쪽이든, 후보 당사자가 아닌 사람의 단일화 주장은 뒤 걱정을 하지 말아야 할 후보의 등을 무겁게 한다.

유승민 후보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것을 드러내고 자랑하기보다 전통의 지지층을 낙심시켰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는 얘기도 자주 나온다. 지역적 한계 때문이다. 이 때문에 좀 더 과감할 수 있는 행보가 제약된다는 우려를 사고 있다.

정치인으로서 유 후보가 13년 동안 보여준 활약은 그가 수도권의 지역구에서도 높은 생존가능성을 보장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어쩌다가’ 그는 지역 색이 강한 곳의 정치인이 됐다. 부친이 정치인이지만, 그 지역구를 물려받은 것도 아니다.

유 후보는 2004년 지역구가 아닌 비례대표의원으로 등원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을 겸하면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과의 경제정책 논쟁에서 최일선에 나섰다. 지금 TV토론에서 보여주는 논리적 분석력과 핵심을 짚는 간단명료한 화법 그대로였다. 당연히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초선의원이 됐다.

1년 반쯤 지나 대구동을 지역구에서 재보선이 실시됐다. 참여정부의 이강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도전장을 냈는데 그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열린우리당이 대구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기념비적인 결과를 낼 듯한 여론조사 결과였다. 이를 막기 위해 유승민 의원이 투입됐다.

유 의원은 비례대표를 사퇴하고, 지역구에 출마해 박빙의 승부 끝에 승리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유 후보는 오늘날까지 그 지역구의 정치인으로 이어지고 있다.

만약 그때 해당 지역구에 재보선이 없었거나, 다른 사람이 출마했다면 유승민 후보는 다음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수도권 경합지구에 투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2008년의 분위기는 서울·경기에서도 유 후보와 같은 한나라당 후보가 낙선하는 건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유 후보가 여타지역의 정치인이라면 지금의 정치적 운신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기보다 한두 가지 근본적인 개성을 강조하는데 집중한다면, 후보 본인과 소속 정당 모두 상당한 확장가능성을 확보할 수도 있지 않을까. TV토론에서의 맹활약이 선거가 끝났다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총선이 실시되는 것도 아니다. 그 사이 많은 정치과정들이 벌어지기 충분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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