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과장하며 평지풍파 조장할 경우, 투기세력 입맛 돋울수도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지금부터 5년 전, 삼성이 애플과의 스마트폰 디자인 소송에서 패소해 막대한 배상금을 내게 된 직후다. IT 관계회사들이 밀집한 강남 한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을 먹고 있었다. 다른 테이블 젊은 남성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듣게 됐다.

“경제기자들 얘기는 낯 뜨거워서 못 보겠더라. 어디는 ‘이제 삼성이 독자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고 기사 쓰더라.”

음식을 먹던 일행의 실소가 이어졌다.

순간, 우리 역시 저런 식으로 기사 쓴 것은 없는지 잠시 돌이켜보게 됐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가 다시 발부돼 그가 수감된 요즘, 이보다 더욱 심해진 독자 반응을 자주 접하고 있다. 페이스북에는 ‘오늘의 친 삼성’으로 선정된 기사 링크가 걸리고 거기에 무수한 조롱 댓글이 달리고 있다.

올린 사람은 내가 아는 이도 아니다. 워낙 이 글이 많이 읽히다보니 나까지 보게 된 것이다. 그 기사를 쓴 기자도 만약 페이스북을 한다면 자기 기사가 어떻게 취급받고 있는 지 봤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공유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기사들은 포털 주요 뉴스 편집에 포함되지 않는 편인데, 독자들은 그럼에도 기어이 찾아내 공공의 광장으로 끌어오고 있다.

이 부회장 구속으로 인해 해외 마케팅도 못 가게 됐다는 기사가 달리면, 거기에는 “상대방도 피의자인줄 뻔히 알는데 무슨 마케팅을 하냐”는 비판이 달린다.

기자와 취재원의 정서적 밀착은 늘 경계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만큼 뿌리치기도 쉽지 않다. 나는 혹시 그런 행태를 보이는 적이 없는가 자문하기도 벅찬데, 다른 기자들 흉볼 형편이 전혀 못된다.

대세 지장 없는 가운데 출입기자가 홍보팀장 편하라고 뭔가 하나 쓴 모양이라고 넘기지만, 이런 것이 독자들을 배신하는 것은 아니냐는 문제의식까지 내던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여기도 나는 중요한 단서를 달았다. 과연 대세지장이 없느냐는 것이다.

지금 시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 경제에서 당연히 진행될 재벌개혁 작업을 기사 하나로 주저앉힐 만한 기자는 없을 것이다. 과거에 그런 기자가 있었다면, 그것은 시장경제가 아닌 관치나 별도의 과두적 집단이 경제를 이끌던 시대였기 때문일 것이다.

법과 시장규율, 투자자의 신뢰를 어긴 기업은 매를 맞아야 한다는 대세를 기자가 바꾸지는 못한다. 시장경제는 그런 것이다.

문제는 섣부른 글들이 오히려 다른 차원의 매를 가중시킬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예전부터 재벌 총수가 수감만 되면 ‘그 회사 경영이 마비돼서 큰일’이라는 식의 기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등장한다. 이런 일이 기계적으로 반복되니 독자들에게는 아무런 느낌도 못 주고 있기는 하지만, 행여 이런 것이 과도한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게 되면 그 후폭풍은 일파만파로 확대된다.

때로는 경영이 타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앞장서 밝히는 경우도 있었다. 굳이 대놓고 얘기할 것도 아닌 일을 이러는 의도가 혹시 특단의 선처를 받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뒤따른다.

그런데 30년 가깝게 자본자유화를 진행해 시장경제에 들어선 한국은 엄살도 상황을 잘 판단해가면서 부려야 한다. 섣부른 엄살은 아프리카 하이에나의 초원에 일부러 상처를 내 피를 흘리면서 걸어가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벌 총수가 구속 수감되는 이런 현실은 당연히 전 세계에 널린 투기자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들은 회사를 인수해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기업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천문학적 이윤을 남기는데 혈안이 된 사람들이다.

총수부재에도 기업의 활동이 건재하다면, 이들은 소리 소문 없이 멀리 사라져간다. 그러나 만약 회사의 주가가 과도하게 저평가되는 수준이 되면 바로 피에 굶주린 속성을 드러낸다.

지금부터 14년 전, 주요 외신의 대문에 한국의 4대재벌 총수 가운데 한 사람이 죄수복을 입고 포승에 묶인 사진이 큼직하게 등장했다. 한국 언론은 이 모습을 그대로 내보낸 곳이 없었다. 외국인들이 이참에 한국 재벌을 단단히 욕보이려는가하는 느낌도 좀 드는 편집이었다.

사태는 욕보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투기자본이 대대적으로 공격을 감행했다.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는 이 회사의 취약한 계열사를 집중 공격했다. 이 계열사가 넘어가면 핵심기업인 이동통신사까지 모두 경영권이 넘어갈 뻔한 위기였다.

3년에 걸친 공방 끝에 이 투기자본은 수 천 억원의 이윤을 남기고 떠났다.

이 사태로 한국 경제는 피투성이가 됐지만, 훗날을 위해 얻은 소득도 있다. 지배구조의 교훈을 깨달아 관련 제도를 손질하게 됐다. 이때까지 한국 주식시장은 어쩌다 한번 1000을 기록하고는 다시 500~600 수준으로 곤두박질치기만 반복했다.

그러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노력이 시작되자, 1000은 물론 내친 김에 2000선까지 도달했다. 13년 전에 달성한 2000선을 지금의 주가지수가 여전히 그 언저리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국가경제 전체적인 차원의 얘기다. 그때 해당 재벌의 앞날은 정말 하루 앞을 내다보기 힘들었다. 그때만 해도 ‘국적자본’의 개념이 강조돼 여기저기서 백기사 자본들이 등장해 이 기업을 외국 자본의 손으로부터 지켰다.

국민연금의 지난해 삼성물산 합병 찬성은 한국의 10년 넘게 쌓아온 지배구조 개선작업에 커다란 흠집을 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법에 따른 판단을 피할 길이 없는데,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피해를 위험선 아래로 묶는 것이다.

‘나도 당신 편’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평지풍파를 조장하는 호들갑은 의도가 무엇이든, 고난을 겪고 있는 기업을 하이에나 떼에게 등 떠미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시장경제의 속성이다.

출중한 인재들이 운집한 기업이므로, 어려운 시기를 잘 헤쳐나갈 충분한 역량을 가졌을 것으로 믿는다. 이보다 못한 기업들도 총수부재의 위기를 잘 넘겨서 오늘날 원기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앞뒤를 못 헤아리는 주책이 이들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하지 말아야 한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