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국회 ‘최순실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6일과 7일 청문회는 이른바 ‘풀 기자단 취재’에 의한 방식으로 취재가 허용되고 있다. 모든 기자가 현장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회 상주기자단의 대표 기자들이 취재를 하고 언론이 이를 공유하는 것이다. 장소의 협소함이나 보안상 이유가 필요할 때 불가피하게 쓰는 방식이다.

본지만의 취재한 내용을 독자들에게 전달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나, ‘풀 기자단’ 방식은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현장의 모든 것이 전달되는 장점도 있다. 풀 기자단으로 들어간 기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상황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회의장 내부로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재계 거물들이 대거 집결하는 자리여서 본지 또한 청문회 주변의 현장 취재에 나섰다.
 

▲ 국회 '최순실 국정조사' 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회의장 밖에서 장시간 대기하고 있는 취재진 곁을 청문위원인 하태경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국회 1층 청문회 회의장에서 가장 먼저 마주친 사람은 모 그룹의 홍보 담당자다. 이 그룹 회장이 2012년 말부터 2013년 초까지 고등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때 매일 만났던 사람이다.

그가 모시고 온 회장을 비롯해 일부 건강이 나쁜 총수가 비교적 이른 시간에 청문회를 떠날 수 있도록 배려하자는 움직임이 청문위원간에 있었다. 국회의 관행으로는 아주 이례적인 배려는 아니다. 특히 질문을 집중적으로 받는 증인이 아닐 경우 국회의원들이 이런 배려를 하기도 한다. 국회의원들의 질문 순서를 조금 바꿔서 이 증인들에게 우선적으로 질문을 해서 청문회 출석 목적을 마치고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필이면 이런 내용을 주고받는 메모가 취재 카메라에 그대로 잡히고 말았다. 국민들의 여론이 극히 나빠진 가운데 모든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몇몇 회장을 먼저 돌려보내는 건 벌집을 쑤시는 행위가 됐다.

이 홍보담당자는 “밤 11시까지는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국회 회의는 자정 전에 끝나게 돼 있으니 11시라면 있을 때까지 있는 것으로 각오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과연 그의 말대로 이 그룹의 회장은 밤 10시24분에 국회를 떠났다.

회의장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니 무료하게 대기하는 시간만 한없이 흘러갔다.

7시 무렵, 주요 증인들의 출입통로 근처에 말쑥한 차림의 신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평소 국회에서는 볼 수 없는 단정한 머리, 품위 있는 용모와 빈틈없는 양복 차림의 이들은 9개 그룹 회장의 비서실 사람들이었다.

저녁식사를 위해 곧 정회를 할 것을 알고 각자의 회장을 수행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품격 있는 용모였지만 표정은 잔뜩 긴장돼 있었다. 재벌 회장들이 국회에 출석할 때 이동과정에서 번거로운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을 최대 임무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이런 때는 취재하는 기자 또한 이들의 윽박과 완력에 밀려나는 수도 있다.

약간 긴장되려는 분위기를 누그러뜨린 건 국회 보안담당자였다.

책임자급 경위가 나서서 “비서실 직원들은 기자들이 접근하더라도 무리해서 차단하려고 하지 말고 자연스러운 이동이 되도록 해 달라”고 강조했다.
 

▲ 국회 '최순실 국정조사' 청문회가 저녁 식사를 위해 정회를 하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는 해운사태와 관련한 일부 재벌 총수가 국회를 떠날 때 비서실 직원들이 엘리베이터를 독점하는 등의 무리하고 촌스러운 과잉행동으로 꼴불견을 연출했었다. 국회의원들 스스로도 10년 전에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를 없앤 마당에 재벌 직원들이 민의의 전당인 국회시설을 ‘회장 전용’으로 만든 꼴이다. 이들은 회장이 올라탄 차가 떠날 때도 영화 ‘투캅스2’의 한 장면처럼 이미 멀어진 차의 뒤꽁무니를 향해 70도 각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경위의 지침이 효과를 발휘해서 이번에는 촌티 나는 과잉행동이 보이지 않았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가장 먼저 회의장을 나서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총수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뒤를 따르자 기자들은 저마다 흩어져 회장 총수들에게 다가가 질문을 던졌다. 회장들은 대부분 질문에 답변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 차에 올라탔다.

‘우리 회장에게 누구든 다가가는 걸 용납할 수 없다’는 식의 과잉 수행은 사라졌다.

국회 보안담당자는 “정세균 국회의장과 우윤근 사무총장으로부터 회장 비서실 직원들의 과잉행동으로 볼썽사나운 장면이 나타나지 않도록 잘 안내하라는 방침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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