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 디즈니 만화 '라이온 킹'에 등장하는 하이에나 일당. 이들은 주인공 심바의 사악한 삼촌인 스카의 졸개들이다. /사진=디즈니 만화 '라이온 킹' 유투브 화면캡쳐.


[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45] 지금은 어른이 된 조카들이 꼬마 시절, 내가 나름대로 비추천만화로 지정한 것이 있다. ‘라이온 킹’이다. ‘삼촌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심어준다’는 이유에서다. 비디오테이프를 사서 선물까지 했으면서도 이 만화를 보고나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

이 만화의 악당인 삼촌 사자 스카보다 더 기분 나쁜 존재가 있다. 하이에나 무리다.

드라마를 볼 때, 사람들은 악당 대장에게서는 한편으로 카리스마를 느낀다. 반면 조무래기 악당들에게는 더욱 혐오감을 갖는다.

사람들이 아프리카 생태계의 실제 하이에나에 대해서 갖는 느낌도 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세링게티 초원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비현실적 상황으로 하이에나를 혐오스럽게 스카의 졸개들로 캐스팅했다.

하이에나가 사람들의 기분에 혐오스런 것은 단지 외모뿐만 아니다. 포효와는 전혀 거리가 먼 이상한 울음소리, 남의 사냥물을 뺏어먹는 습성, 사냥감이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는데도 먹어대는 잔인함이 사람들을 질색하게 만든다.

더구나 대부분 사람들이 아프리카 다큐멘터리를 볼 때, 사자를 주인공으로 여긴다. 멋지고 최강자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하이에나는 사자와 먹이를 다투는 숙적이다. 때로는 사자를 헤치기도 한다. 물론 사자도 하이에나를 보기만 하면 죽이려고 덤벼든다. 사자가 하이에나를 죽인 뒤에는 먹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오로지 적대감이 가득한 살생이다.

그렇다면, 아프리카 초원에서 하이에나가 사라진다면 우리는 좀 더 상쾌한 세링게티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을까.

답은 좀 더 상쾌해지기는커녕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같은 다큐채널이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초원의 생태계가 완전 파괴되고 초원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이에나는 초원의 막강한 청소부다. 다른 포식동물이 먹다 버린 사냥감, 이런 저런 이유로 죽어서 부패하고 있는 동물 사체를 먹어치움으로써 청소한다.

상습적으로 치타나 표범 등의 먹이를 뺏어먹음으로써 이들의 개체수를 조절한다. 이들이 치타가 사냥한 영양들을 뺏어먹지 않으면 우선은 치타 수가 엄청나게 늘어 이들의 주 식량원인 영양들이 멸종할 것이다. 초원에 풀은 빽빽하게 자라겠지만, 먹을 게 없어진 육식동물들은 굶주림에 시달리다 사라진 초식동물들의 뒤를 따라갈 것이다.

또한, 하이에나와 경합 관계에 있는 종들의 삶은 험난해지지만 그걸 통해 우수한 혈통을 보존하게 된다.

모든 생명체는 이렇듯 저마다의 기능을 갖고 있다. 하다못해 사람을 괴롭히는 모기 또한 사실은 고등동물의 피로 영양을 보충해 다른 곤충의 먹이가 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한국의 1997년 외환위기를 국제 투기펀드와 깊게 관련된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일부 존재한다.

헷지펀드로도 불리는 이들 투기세력은 금융시장의 하이에나 같은 존재로 자주 묘사된다.

M&A 공격에 취약한 회사가 발견되면 마구 공격해 경영권을 뺏는다. 정부와 중앙은행도 포식대상이 된다. 국가 경제에 커다란 모순을 갖고 있는 나라가 있으면 그 나라 화폐가치를 사정없이 떨어뜨리는 공격을 퍼붓는다.

그렇다면 한국은 1997년 억울하게 하이에나의 농간에 놀아난 것일까.

국제 투기세력의 작위가 전혀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질문은 그래서 다음과 같이 바꿔야 한다.

한국 경제는 아무 잘못이 없었는데 하이에나 같은 헷지펀드들 때문에 외환위기를 맞았나.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간혹 보기는 했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할 당시의 신분이 특정한 기관에 소속되거나 또는 외환위기 당시의 관련 당사자인 경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 경제에 아무 잘못 없었는데 억울하게 ‘IMF 위기’가 와서 수많은 국민이 노숙자되고 도피자되고 많은 기업들이 외국인 손에 넘어갔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은행 빚을 내 돈처럼 쓴 기업, 그걸 전혀 손대지 못한 ‘대마불사’ 경제정책, 무분별한 ‘국제화’ 열풍, 종금사, 경상수지 적자, 어리석은 외환 정책 등 하나하나가 위기를 초래할 것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수두룩한 요인에 관계된 사람들에게는 자신들 책임이 아니라 ‘헷지펀드 때문에 위기를 맞았다’는 주장이 솔깃한 변명이 된다.

만약, 한국 기업들이 투명한 지배구조를 갖고, 은행은 합리적 리스크 관리로 대출을 집행하고, 외환당국은 시장의 힘을 거스르지 않는 외환정책을 펴고 있었다면 투기펀드들이 한국 경제를 공격할 만한 빈틈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하이에나가 알고 보면 초원의 생태계에서 역할이 있듯, 투기세력에게도 일정한 순기능이 있다.

부실한 경영자를 퇴출시키고 고평가된 화폐는 제값을 찾아가게 만든다. 경제에 썩어가는 분야를 잡아먹어서 경제금융 생태계를 청소하는 것이다. 투기펀드의 공격을 받는 당사자는 괴로운 일이지만, 세계 경제의 차원에서는 이런 측면이 있다. 이 또한 초원의 하이에나와 같다.

한국 경제가 투기펀드로 인해 몸살을 앓은 것은 외환위기 전후한 때만이 아니다.

SK그룹의 2003년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은 하마터면 SK텔레콤을 포함한 그룹 전체가 외국인 손에 넘어갈 뻔한 위기였다. 국내 자본들이 연합을 형성해서 SK그룹의 경영권을 지키긴 했지만 이 과정에서 소버린은 최소 8000억원의 시세 차익을 챙겨갔다.

4대 재벌까지 경영권 공격을 받는 현실은 투기자본에 대한 적대감을 불러 일으켰지만, 하필 왜 SK였냐는 것은 돌이켜봐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06~2007년 무렵 발표하던 재벌 그룹 지배구조 매트릭스 자료에 따르면 재벌 총수가 갖고 있는 1주는 순환출자를 통해 일반 주주의 7주와 동등한 힘을 갖고 있었다.

이런 구조는 적은 자본으로 많은 회사를 설립하기도 쉬웠지만, 동시에 적대적 세력의 적은 돈에 그룹 전체가 홀랑 다 날아갈 수 있는 취약한 구조가 된다. 흔히 말하는 ‘양날의 검’인 것이다.

그 때 자료에 따르면, SK 그룹의 지배구조는 특히 취약해서 한 때 회장 1주가 15~20배의 힘까지 갖고 있었다. 이런 약점이 금융계의 하이에나에게 맛좋은 피냄새로 다가왔던 것이다.

SK에서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은 소버린은 지분을 처분한 후 이번에는 LG 그룹 지분을 사들였다. 그러나 LG는 국내 주요 재벌 그룹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지주회사 중심의 단순 지분구도를 갖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버린은 LG 그룹 지분을 처분했는데 여기서는 500억원 가량의 손실을 본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헷지펀드가 국제 금융계의 불법 무도세력이라면, 조지 소로스와 같은 사람이 국제 금융계 유력 인사로 대접받는 일이 가능할까.

소액주주운동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2003년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회사 관계자들에게 강제로 쫓겨나는 일을 겪었다.

다음해 주총에 김 교수는 똑같은 목적으로 참석했다. 회의장에 자리한 주주들은 김 교수 일행이 발언에 나설 때마다 온갖 몰상식한 욕설을 퍼부어댔다.

그러나 이들의 소란과는 전혀 무관하게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은 김 교수와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 송호창 변호사에게 계속 발언권을 보장했고 이들 요구대로 등기임원 선임에 대한 표결도 진행했다. 1년 동안 한국의 기업과 금융문화가 이렇게 바뀌었다.

그로부터 더 시간이 지나 2013년, 김상조 교수는 삼성그룹의 초청을 받고 삼성 사장단에게 강의를 하게 됐다.

이런 변화는 한국 경제가 하이에나 같은 투기펀드에게 진정으로 방어력을 강화하는 모습을 살짝 보여주는 것으로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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