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한은의 국채 인수 거부가 오히려 불모지 채권시장 개척한 교훈을 생각할 때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국민적 분노를 일으킨 옥시 가습기 사건에서 한 전문가는 이렇게 지적했다. “왜 외국에서는 그런 약을 안 만드는지 5분만 생각해 봤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불행이다.”

최근의 경제 현안 하나도 마찬가지다. 왜 제대로 시장경제 하는 나라는 발권력을 함부로 쓰지 않는지, 쓰기만 하면 비용이 최소화되는 아주 저렴한 방식인데도 이를 회피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더구나 한국은 발권력을 남용했다가 아주 큰 낭패를 겪은 경험도 갖고 있다. 1989년 일이다.

한국판 양적완화 논란을 접근할 때 특히 주의해야 되는 점이 있다. 저마다 정치색을 가지고 접근할거면 아예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박근혜 대통령을 좋아하느냐 반대하느냐, 선거에서 어느 정당에 투표하느냐 이런 발로에서 양적완화도 덩달아 찬반을 논하는 천박한 태도가 발붙일 틈도 없어야 된다는 것이다.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내 일처럼 슬퍼하지 않은 국민이 없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색이 개입했다. 반대 정파를 조롱하는 수단이 됐다. 여기서부터 한 마음으로 서로 위로해야 될 재난이 오히려 국민을 더욱 편 가르고 말았다. 정파논쟁이 개입했을 때의 폐단이 이렇다.

어떤 언론은 최근 사설에서 총선 결과로 한국은행이 오만해졌다는 참으로 민망하기 이를 데 없는 글을 내보냈다. 오래전부터 글을 통해 진짜 존경하는 선배 언론인이 있는 곳인데, 절대 그 분이 썼을 리 없는 글이라고 확신한다. 총선 분석만 할 줄 알고 경제나 금융을 모르는 기자는 이번 논란에 글을 쓰지 말아야 한다.

지금 분명한 현실은 구조조정을 해야 되고, 그에 따른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일이 잘 마무리되면 보기 드물게 한국 경제는 파란을 미리 막아낸 것이고, 잘못되면 그 부작용이 또다시 20년은 족히 넘도록 치유되지 못하고 남을 것이다.

지금과 꼭 비슷한 상황에서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지난 2004년 타계한 전철환 전 한국은행 총재의 1998년 모습이다.
 

▲ 한국은행 총재 재임하던 시절의 고 전철환 총재.


전철환 총재 생전의 인품이 어떠했는지 조차 ‘배를 산으로 끌고 갈’ 소지가 있어서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청렴한 것이 돈 문제 해결에 무슨 상관이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아래 예전의 관련 기사에서 소개했다.

1998년 9월, 외환위기가 발생한지 10개월이 됐고 전철환 총재는 한은 총재에 취임한 지 5개월 됐을 때다. 나라에 크게 돈이 필요해 재정경제부(지금의 기획재정부)는 14조원 규모의 국채를 발행했다.

지금같이 초 단위로 금리가 변하고 무수한 기사가 생산되는 그런 채권시장이 없던 시절이다. 제대로 된 채권시장을 교과서에서나 봤지 실물로 보지 못하던 시절이다.

막대한 규모의 채권을 재경부는 한은이 우선 인수해 주기를 희망했다. 지금까지 통상적인 정부와 한은 관계에서는 새로울 것도 없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안한다면 안하는’ 전철환 총재 특유의 소신이 정부의 계획에 차질을 빚었다.

전 총재가 반대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첫째는 중앙은행의 발권력은 정말 신중하게 행사해야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번을 계기로 국채 유통시장을 활성화하면 그게 더 비용도 줄이고 경제에 ‘대박 상품’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결론은 한은 인수가 아니라, 시장을 통한 발행으로 정해졌다.

9월3일. 3년 만기 국고채 14조원어치가 낙찰됐다. 낙찰 금리는 11.6% 였다.

이렇게 해서 한국에 채권시장이란 것이 생겼다. 여기에서 무수한 채권 관련 상품이 생겨나고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채권 자체의 딜링 뿐만 아니라 금리 스왑 거래도 시장이 만들어졌다.

오늘날 채권시장이 주식 외환과 함께 3대 금융시장이 된 건, 전철환 총재의 “발권력은 신중하게 행사돼야 한다”는 원칙이 한국 경제에 안겨준 선물이다. 이 때의 선택으로 한국은 유전 10개에 맞먹는 부를 창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제대로 된 시장경제다.

1989년의 한국과 너무나 비교되는 순간이다. 떨어지는 주가를 붙잡기 위해 무제한의 발권력을 행사한다고 큰소리 쳤다. 하지만 주가 하락을 막지 못했다. 떨어진 주가야 나중에 다시 올라가면 되는 일이었다. 더 큰 문제는 한은 개입을 통한 증시 부양의 대행 기관이었던 3대 투신사가 국가적인 문제가 됐다. 1989년의 일로 골병이 들은 투신권 부실은 1997년 외환위기 보다도 청산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이색적인 것은 1989년 발권력을 남발한 재무부 장관과 1998년 전철환 총재의 소신을 존중한 재정경제부 장관이 동일인물인 것이다.

당장 중앙은행이 돈을 찍는 것이 하루만 내다보는 근시안으로는 수월해 보이는 모양이지만, 이 길은 뻔뻔하게 후대에 배설물을 물려주는 길이다. 또 조선업 구조조정을 위해 발권력을 행사하면 훗날 건설업이든 뭐든 다른 업종의 구조조정 때는 무슨 논리로 이를 사절할 건가.

기왕 돈을 쓸 곳이 있다면, 왜 국채 발행을 한사코 피하려 하나.

국채가 늘면 국가 채무비율이 눈에 띄게 높아져 국제 신용도에 부담을 줄 수는 있다. 그러나 꼭 필요한 부채와 그렇지 않은 부채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국채 발행을 피해서 발권력 남용으로 편법을 쓰던지 공공기관 채권으로 때우는 것은 그 또한 국제 금융계에서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사람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누가 지켜보기 이전에, 후대에 폐기물을 전가하는 것이 더욱 두려운 일이다.

1998년 국채 발행에서 보듯, 국채는 다양한 금융의 파생 부가가치를 만들어준다. 그렇다고 해서 필요 없는 국채를 발행할 것은 아니지만, 기왕 필요한 돈이라면 국채로 조성하는 것이 자손 대대로 혜택을 늘리는 길도 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국채의 물량 증가에 대해 생각할 것이 있다. 한국 경제가 정말로 미국 같은 양적완화를 해야 할 때가 올 경우다.

미국과 일본의 양적완화에서 큰 차이는 채권시장의 크기다. 미국의 양적완화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이제 금리도 본격적인 인상 국면에 들어갔다. 반면 일본은 미국을 따라 나선 양적완화에서 뜻밖의 걸림돌을 만났다. 채권 물량의 부족이다.

일본 은행들이 보유한 국채는 양적완화 이후 38%가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중앙은행인 일본은행 금고로 들어간 것이다.

미국의 풍부한 국채 시장이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떻게 국가 경제에 기여했는지 비교되는 사례다.

억측이지만, 만약 대통령까지 나서서 중앙은행 발권력을 언급한 것이 본심은 국채 발행을 위한 분위기 조성이라면 이 정도에서 논란을 그만두고 정정당당하게 전문가 위주의 논의를 시작할 것을 주장한다. 다른 나라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최고 통치자의 발권력 언급은 체면에도 좋지 못하다. 정치권이 자꾸 중앙은행 길들이기를 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국격에 좋지 못하다.

가뜩이나 미국 재무부가 한국을 5개 환율조작 감시대상국으로 묶어놓은 직후다. 혹자는 조작국을 면한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현실은 최상위 감시대상국에 포함된 것이다. 조작국으로 지정된 나라는 하나도 없다. 통화 정책이 더욱 조심스러워져야 할 이유가 추가되고 있다.

‘안한다면 안하는’ 소신을 가진 전철환 총재가 18년 전 남긴 교훈이 있다. 꼭 필요한 돈이라면 ‘유일호 본드’를 두려워할 일도 아니다. 시간이 지나 그것이 경제를 더욱 윤택하게 만든 사례를 전철환 총재와 함께 이미 경험했다.

꼭 필요한 돈을 원칙에 맞게 조성한다면, 그걸 누가 감히 반대할 수 있나. ‘원칙에 맞게’라는 점을 더욱 강조한다. 원칙에 어긋난 돈일 때 국회에서 표 대결이 염려되는 것이고,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와 금융에서의 ‘원칙’이란, 그것이 더 많은 사람들의 부를 높여주고 손해는 최소화하는 것으로 입증됐기 때문에 존중받는 것이다. 훗날까지 멀리 내다보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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